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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04. 2022

귀찮지만 수영하러 갑니다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차가 먹고 싶어 진다.

티포트에 물을 끓인다. 유효 기간이 지난 녹차라테를 컵에 털었다. 끓은 물을 컵에 넣고 잼 나이프로 휘휘 젓는다. 따뜻하고 달콤하다.  마트에서 겨울을 대비하여 여러 가지 차를 사다 놓아야겠다.


아침 7시 23분.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건, 사실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어제는 피곤했는지 자정이 조금 넘어서 잠이 들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베르나르 베르베 르나르의 '죽음'을 들으며.


3시간 정도 잤을까. 눈을 떠졌다. 동생이 새벽 세 시간 넘어서야 잠 잘 준비를 하는 듯했다. 작은 집에서는 작은 움직임 소리도 다 들린다. 부스럭부스럭.


그 작은 소리에 깼다. 깊이 잠들지 못한 것이다.

낮에 일어나려고 한 노력이 오히려 밤 낮이 바뀐 생활보다 활기차지 못한 것 같다. 새벽에 자고 낮에 일어날 때도 적어도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전날도 하루 종일 피곤한데 잠들지 못했다. 잠을 자게 되면 하루가 사라지는 게 싫었다. 자고 싶은데 잠들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집을 요리조리 돌아다니거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 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아... 나는 바뀔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언제인가 멈춘 건 지도 모른다. 돈을 벌러 나가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버스도 타고,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평범하게 지낸 것 같은데. 일이 종료되었고 시간이 생겼다. 몇 달의 여유가 생겼으나 시간의 홍수에 제멋대로 흘러가는 기분이다. 자기 통제권이 없는... 무력감에 익사할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균 수명을 고려해 본다면 앞으로 40년은 더 살 것 같은데. 앞으로 일 년 후도 어떻게 살아갈지, 그조차 막막한데 40년의 세월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온갖 걱정을 한다. 지나 지다 싶을 걱정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나는 내가 시간을 잘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차곡차곡 무언가 해내지 않을까. 하며 미래의 대단해진 나를 상상하기도 한다.


며칠 전 자유 수영에 등록을 등록했다. 대기만 6개월 걸렸다. 그래서 기존에는 일일 이용권으로 수영장을 이용했다. 쉬게 되면 꾸준하게 가고 싶다고,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거라고. 일을 하지 않고 지낸, 최근 두 달 간의 스코어는 한 고작 세 번. 열흘에 한 번 꼴이다. 11월 신청 대상 문자가 받고, 마지막 날까지도 등록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한 달에 세 번 갈 거면 일일 입장권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럼 일일 권으로 이용하면 될 것을 왜 고민을 하느냐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면 첫 번째는 도서관, 두 번째는 수영장을 알아본다. 예상 밖으로 나는 이 동네에서 육 년 동안 살고 있으며, 비회원 신분으로 수영장을 이용했다. 대기를 걸어두면 언제가 연락이 오긴 온다. 그게 언제인 줄 모르는 게 문제지만.


몇 해 전, 신청 대상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갈 시간이 없어서 포기했다. 회사가 서울이어서 칼 퇴근을 하고 돌아와도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쉬는 동안에 신청 문자가 왔고, 놓치기는 아까웠다. 최근 나는 루틴이 너무나 간절한 상태로 게을러 질대로 게을러졌다. 누가 내 팔을 질질 끌어 밖으로 데려가 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누워있다. 날이 추워지니 밖에 나가는 게 더 싫어졌고. 등록일 마지막 날. 나는 도서관에 있었다. 그날도 게으름에 지쳐서 나왔을 것이다. 밖에 나가 독서라도 해야 죄책감이 덜 하니까. 정신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헐거워진 나사를 조이듯이. 잊고 있던 신청 기간 문자가 생각이 났고, 해석하기 어려운 공고라도 읽듯이 문자를 뚫어져라 봤다. 노트북을 열어 결제 등록을 했다.


이 돈은 기분 비용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마음이 무거워져야 하지 않겠나. 일상에 제약을 주기로 했다. 내가 가든 가지 않든 꾸중을 들지도 않을 테지만. 그리고 서가에서 에세이 한 권을 가져왔다. 수영장 에티켓, 수영복 고르기, 영 법 등 작가 본인이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것들에 대한 책이었다.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수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벽을 낮춰주고, 나처럼 수영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들은 공감도 되고, 수영을 하러 처음 갔을 때, 당황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수영에 잘 가고 있느냐고요? 첫날은 가지 않았고, 전날이었던 둘째 날은 하루를 몽땅 침대에서 날려버리기 직전에 수영장에 갔습니다. 하루의 목표가 수영 가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등에 두 어깨에 납을 지고 이고 있는 듯 무거워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습니다. 아, 이런 마음은 도서관에 갈 때도, 커피숍에 갈 때도, 가끔 가는 교보문고에 갈 때도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한결같습니다. 일상의 작은 선택부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선택까지, 언제나 선택에 망설여집니다. 굳은 마음을 먹고 수영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회원 카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모니터에 주민 번호와 이름 적고 전화번호를 인증하고, 결제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회원 카드를 핸드폰 케이스를 열어 안쪽에 두었습니다.


오후 6시. 수영장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고, 작게나마 전해졌어요. 내일도 오고 싶어 졌습니다.


첨벙첨벙!! 푸아푸아!!


그런데...


어제 했던 오후 수영 덕분에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는데 3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이른 아침부터 일기를 쓰고 있네요.


아... 아... 피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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