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무기력.“

어느 날 무기력이 나를 찾아왔다.

by 와리

“안녕, 무기력.“


어느 날 무기력이 나를 찾아왔다.


그것의 정체와 이름은, 번아웃인지 무기력인지 우울증인지 우울감인지 그저 게으름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편의를 위해 무기력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언제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깨닫고 보니 어느샌가 내 안에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너무 힘들다고 느꼈을 때였다. 자고 일어난 지 1초밖에 안 되었는데도 벌써 피곤했고 오늘 하루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여러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대로 온갖 달콤한 희망으로 나를 달래 봐도 이미 닫힌 마음이 쉽게 돌아서 주질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꾸역꾸역 살아가야 할 오늘이 싫고도 싫었다. 오늘을 마주하기 전에 이미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다.


그동안 읽어 왔던 심리학 책들에서 어설프게 얻은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깜빡거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결코 괜찮은 일이 아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지금의 나는.


아주 조금 남은 의욕, 혹은 생존 본능을 겨우 끌어 모아 지금 이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심호흡(생리적 호흡)이라든가,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과 감정을 한 발 떨어져서 이름을 붙이려 해 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진단은 이랬다.

의욕 없음, 무력감, 아주 힘든 일을 앞둔 것 같은 부담감,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중간에 꺾여 버리고 말 것 같은 원초적이고 강렬한 두려움, 이렇게까지 몰린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할 기운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럴 기운이 남아 있을 무렵에는 내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해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나 자신의 상태를 지금처럼 한 발 물러나 관찰하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어떤 조그만 변화를 이루어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무기력해진 지금에서야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누구인지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과 그보다 더 큰 자책이 밀려온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누구에게라도(실은 나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원망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다. 생각이 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할 때 간신히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럼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예전에 그런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경험이, 그 끝도 없고 희망도 없던 어둠의 기억이,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지금의 나를 붙잡는다. 속으로 되뇐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그대로 있는다. 원망과 슬픔과 연민을 그저 가만히 견디려 한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서. 그대로, 가만히 견디려 한다.

내 마음이 조금은 견고해지기를 바라는, 그래도 아주 조그만 희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