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를 두고 떠나갈 때에도
나는 살고 싶었다. 행복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살고 싶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조차 내 의지로 선택하고 싶었고, 모든 순간을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맞이하며 온전히 음미하고 싶었다. 소로의 말처럼 삶의 정수를 쪽쪽 빨아먹고 삶을 약분하고 싶었다.
사과를 먹으며 그 새콤한 맛을 혀 끝 깊이 녹이고 싶었고 아이가 방울처럼 웃을 때면 나도 온 존재를 웃음소리로 채우고 싶었다. 개의 북슬북슬한 털을 어루만지며 그 따스함 속에 잠겨 들고 싶었고 산책을 하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눈을 감고 나도 바람이 된 듯 그 순간에 녹아들고 싶었다. 내 몸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하고 싶었고 자연이 우리를 위해 숨겨 둔 보물 같은 향과 맛과 느낌을 놀이하듯 찾아내며 그 모든 선물들에 감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기력이 들러붙었던 그 무렵의 나는 마치 투명하지만 두터운 비닐막에 싸인 듯 무감각했다. 그곳에는 빛도, 소리도, 색채도, 향기도 없었다. 나를 여기 버려둔 저편의 삶은 그런대로 어떻게든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편에서는 그 모습이 마치 비에 젖은 유리창 너머처럼 어딘가 일그러져 보였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닿을 수 없었다.
마치 내 삶이 나를 두고 떠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무기력이라는 진흙탕에 발이 잡혀 머리끝까지 수렁이 차오르던 그 순간에도.
허우적대느라, 괴로워하느라, 탓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탓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나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주위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조차.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소소한 희망의 조각들, 행복의 먼지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쌓이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힐끔 쳐다보며 신뢰와 애정을 건네는 우리 개의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이라든가, 햇살 좋은 날 눈을 뜨자마자 귓가에 울리는 아이의 깔깔거리는 방울 같은 웃음소리, 운 좋게 불어온 바람에 몰래 흘릴 수 있었던 눈물, 온몸을 쥐어짜듯 혹사하며 운동을 할 때 매트에 뚝뚝 떨어지던 땀방울 같은 것들.
나는 너의 힘듦까지 받아들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 나를 똑바로 바라봐 준 친구들의 깊은 눈빛, 내 무기력에 무심한 듯했지만 실은 조용히 기다려 주던 반려인이 오랜 정체 끝에 내가 조금씩 의욕을 낼 때마다 호들갑스러울 만큼 기뻐하며 건넨 서툴지만 마음에 스미던 응원의 말들, 매일 매 순간 나 자신과 벌이는 작지만 고된 갈등과 투쟁에서 어떻게든 이겨내어 뭐라도 꾸역꾸역 해냈던 그 작고도 위대한 승리의 순간들 같은 것들이다.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사소해 보였고 너무 작아 보였고 그나마도 나를 덮은 우비처럼 무거운 무기력을 뚫지 못한 채 비껴가 버리는 듯싶었지만.
그런 순간들은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도 조용히 나를 붙잡아 주었음이 틀림없다.
어느 날 필사적으로 뻗은 손끝이 선연하고 생생한 삶의 순간에 가닿는 그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