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잘 부탁해
아침, 겨우 잠에서 빠져나와 눈을 뜬다. 밤에 잠이 드는 일도 어렵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일도 어렵다. 자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고, 눈 뜨기 싫지만 일어나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아침에 눈을 뜨기 어려운 것은 몸이 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매번 되풀이되는 일이다. 내 몸이라는 이 물건은 도무지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오래 이어져 온 습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짓는 일조차 오늘은 잘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이미 오늘 해야 하는 일 목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밥을 챙겨주고, 등교를 시키고 나서, 집 안을 제대로 정리해 두고, 매시간 쌓이는 듯한 설거지와 빨래를 우리 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식기세척기와 세탁기에 맡긴 다음 자리에 앉아 서둘러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이미 마음이 급해져 버리기 때문에 일 자체에 깊이 빠져들기가 몹시 어렵다. 오늘의 할당량을 끝내지 못해서 작업실에서 제때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면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할 때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급하고 숨이 찬다. 쫓기는 기분으로 하는 요리가 즐거울 리 없다.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의식적으로 어깨의 힘을 뺀다. 그제야 잠을 자는 내내 어깨가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지는 몇 번의 한숨. 이제 이 미적거림을 끝내고 어서 빨리 아침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휘몰아치듯 끝난 저녁 시간을 뒤로하고 몸을 씻으며 달리 무슨 할 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한다. 저녁 설거지도 끝냈고, 빨래도 개어 정리해 두었다. 배송 온 택배를 아직 뜯어 확인하지 못했지만 조금은 더 현관참에 놓아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거실에 이리저리 널려 있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 몹시 신경에 거슬리지만 이 저녁에 그것까지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이 정도로 됐어, 하며 몸을 돌린다.
아이가 잠든 다음 침대에 베개와 인형들을 쌓아 편한 등받이를 만들고 반쯤 기대어 눕는다.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싶었더라?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더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책, 그림 그리기, 음악. 여러 앱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유튜브 앱을 켠다. 무언가 즐거운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하기에는 지금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별일이 있지도 않았는데 그냥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 무언가 마음에 눌어붙어 있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이 기운 없는 상태를 잊기 위해 유튜브를 켜고 가장 의미 없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영상을 켠다.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회피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회피를 그만두기까지 변명을 늘어놓는 괴롭고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조금 지친 것뿐이야. 금방 지나갈 거야. 이제 곧 나아질 거야.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나아지지 않았다. 지나가지도 않았다. 너무 오래 쫓고 쫓긴 나머지 이제 도대체 뭐가 나를 닦달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치고, 체념하고, 회피할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이제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싶은 순간에야 나는 고개를 들고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은 다음 외면하고만 싶었던 나의 무기력과 마주한다.
“안녕, 무기력.”
앞으로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