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햇살과 호떡과 새싹
바다에 갔다. 살짝 비린내가 풍기고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지만, 하얀 모래가 드넓게 펼쳐진 풍경에 그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달콤하고 기름진 호떡을 하나씩 먹고 모래밭을 달리는 아이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햇살을 받아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이는 모래를 관찰한다. 자세히 보면 모래는 흰색이 아니라 투명하고 다채로운 색색으로 물들어 있다. 손끝에 닿는 모래의 감촉, 세찬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등을 따스하게 데우며 졸음이 오게 하는 햇살.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런 순간이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 하루를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내일에 대해서는, 아직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책이나 영화에서는 어떤 계기로 인해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떨치고 일어나는 주인공이 나온다. 물론 재미와 속도를 위한 극적 허용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게 문제가 풀리지 않는 법이다.
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란 것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면 찾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보인다. 그걸 어떤 사람은 운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인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운명이라고 할 것이다. 우주의 도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기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뒤에 따르는 정말 중요한 시기를 간과하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혹은 우주의 메시지를 받아,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자. 그다음에는 이제 온전히 스스로의 힘과 의지만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내 경우 진짜 싸움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주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생각하면 두 걸음을 후퇴하고, 조금은 수월하게 세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어떤 날에는 무척 기분이 좋아 다섯 걸음만큼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는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나날이 길게 이어졌다. 중간에 지쳐 쓰러졌을 때는 오히려 처음보다 다시 일어나기가 더욱 힘이 들었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린 것처럼.
햇살에 물든 바다의 순간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 이제 기운을 내서 무언가를 하자‘고 마음먹지만, 또다시 ’그걸 지금 꼭 해야 해?‘라는 마음이 치솟는다. 여기에서 힘을 내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급진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어렵다.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힘을 나누어 쓰는 기분으로, 그래도 조금은 힘을 내어 마당을 뒹굴던 화분들을 정리한다. 일회용의 플라스틱 화분을 잘 씻어 말려 두었다가 해바라기 씨를 심어 싹을 틔우거나 조금 자란 로즈마리와 라벤더의 꺾꽂이 화분으로 써 볼 작정이다.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늘어서게 될 해바라기 새싹 혹은 로즈마리 가지를 생각하니 조금 기운이 난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사소하고 작은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