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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율 Feb 19. 2024

사색의 숲에서 늦겨울 함박눈

사진: 한 율 (코레아트)


늦겨울 예고 없이 쏟아진 함박눈. 눈 위로 쏟아지는 하얀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에 대한 낭만과 호기심은 예전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주위의 풍경이 흰색 도화지를 두른 듯 변하는 점은 언제 보아도 새롭다. 특히 인적이 드문 겨울 은 순식간에 순백의 풍경으로 변한다. 삭막한 겨울산의 풍경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공간으로 변신한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눈이 내린 겨울 숲 사이로 저물어가는 태양. 막한 고요만이 감도는 공간에 온기를 더하는 붉을 노을. 늘에 퍼지는 석양빛이 따뜻한 기운을 전달한다.


태양은 나뭇가지 사이로 마지막 온기를 힘겹게 발산하며 뉘엿뉘엿 넘간다. 해가 지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섭리이자, 자명한 결과이다.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처럼 우리에겐 당연하리 만큼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 하지만 눈이 내린 풍경 속에서 바라본 일몰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장작이 타들어가며 남긴 듯한 여명. 붉은 그을음을 남기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적막이 감도는 고요한 겨울산. 사색의 숲에서 글을 시작한다.


한 달여간 브런치에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 새로운 글을 올릴만한 재료는 충분하였다. 그러나 글을 쓸 여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작년 하반기부터 직접 찍은 사진과 그에 대한 생각을 덧붙인 형태의 사진 에세이를 중심으로 작성하고 있다. 나의 눈으로 담은 풍경이기에 이를 글로 표현하기가 쉬웠다.


무엇보다 이미지를 글과 함께 제시하기 때문에 단순이 글로만 생각을 표현하는 것보다 덜 추상적이고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로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충족되지 않은 무언가가 계속 마음 한편에 아른거렸다. 글을 게시하기 전 저장된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으며 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막막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같은 하늘도 주위의 사물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심 속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하늘은 어딘가 비좁은 느낌이라면 자연 속에서 바라본 하늘은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려도 어딘지 모를 여백 느껴진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고갈과는 사뭇 달랐다. 왜냐하면 글을 담는 그릇인 글감과 소재를 넉넉히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나만의 브런치 스토리를 성장시킬 자신도 있었다.


물론 수년간 걸쳐 쌓아 둔 수백 개의 글은 아직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어렴풋이나마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산속 깊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겨울나무에 눈이 쌓이자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난다.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겨울에 핀 꽃과 같았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2월 늦겨울에 내린 눈.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높은 기온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녹기 시작하였다. 눈이 그치자, 나뭇가지 위로 녹은 눈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


이처럼 눈 녹듯 사라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굳이 주위를 둘러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우리 자신 안에서 삽시간에 사라지는 무수한 것들을 떠올려보자.


사진: 한 율 (코레아트)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지나간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을 들여 과거의 시간을 반추하자 잊고 있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흘러간 날들이 조각조각 모여 만든 지금이라는 시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눈 녹듯이 사라질 기억.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가만히 놔두면 말없이 사그라드는 순간들을 글로 엮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늦겨울의 함박눈을 맞으며 사진들을 남긴 이유와도 같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지난 계절에 남긴 자연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가을이 지나며 말라붙은 나뭇잎 위로 쌓인 눈처럼 말이다. 머지않아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사귀를 뻗을 것이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과거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인' 고요함이 감도는 겨울 숲 속에서 한참의 시간 동안 사색하였다.


나뭇잎에 내린 눈이 녹아 옷 위로 톡하고 떨어진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순간들 사이에 서 있다. 빠르게 흘러간 세월 속에서 미처 알지 못한 채 변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변하는 중이다. 심지어 스스로 변함없이 정체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떤 부분은 과거와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


사진: 한 율 (코레아트)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창작의 불씨는 예고 없이 꺼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순간에 마주하게 되더라도 쓸 수 있는 한 열심히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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