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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율 Jan 24. 2024

평범한 장소를 사진으로 남길 때

사진: 한 율


뻔해 보이는 공간을 다시 들여다 보기


 일상적인 풍경을 사진으로 조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마주치는 풍경도 사진을 통해 다시 보면 그동안 보았던 것과 다른 새로움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은 포토스팟이나 명소를 찾지 않아도 쉽게 남길 수 있다. 수고로움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저 길을 걷다가 사진으로 남기면 되기에 참으로 편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SNS를 가득 채운 풍경처럼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장소이다 보니 뻔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우리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 사진으로 남길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지나치다가도 문득 머릿속이 번뜩이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사진: 한 율


정반합


 그러한 순간이 바로 사진을 남기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다. 평범한 풍경 안에 특별함 한두 방울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일상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특별함이 감돌아도 이를 무시한 채 지나치기 쉽다.


 위의 사진을 살펴보자. 이 사진은 학교의 철조망 사이로 삐져나온 관목을 찍은 것이다. 우리가 평소 동네를 걷다가 마주하기 쉬운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철조망 사이로 삐져나온 나뭇잎을 보자,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규칙적인 모양으로 반복되는 철조망이 갇힌 느낌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철조망의 틈새로 불규칙하게 자라난 초록빛 나뭇잎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사진: 한 율

상반된 속성을 하나로 합치기


 '정반합'이라는 말처럼 상반되는 속성들이 하나의 사진 안에 담기면 묘한 인상을 선사한다. 자석의 양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듯이 반대되는 이미지는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불균형한 것들이 합쳐지면 그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미를 느낄 수 있다.  


 회색 암벽을 타고 자라난 담쟁이덩굴의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무채색의 암벽과 반대되는 담쟁이덩굴의 초록빛 생명력. 하강하는 속성을 역행해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렇지만 계절이 바뀌며 자연스럽게 낙엽이 지듯 갈색으로 변하는 담쟁이덩굴잎의 모습. 대비되는 이미지는 교차하며 사진의 깊이를 더한다.



사진: 한 율


고장 난 자동차


반파된 상태의 부서진 자동차.


기능하지 않는 고장 난 자동차 한 대가 공업소 안에 주차되어 있었다.


고장 난 자동차를 보고 우리는 자동차가 심하게 부서진 상태를 떠올리기보다는 그 반대의 이미지를 상상한다.


파손되지 않은 멀끔한 상태의 자동차를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래서 고장 난 부분을 더욱 강조하여 사진으로 남겨보면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위의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사진: 한 율

이미지 뒤집기


이 사진을 보고 어떤 풍경인지 궁금증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밤에 눈이 내리는 풍경'


'깨진 조각들'


'튀긴 빗물'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은 길거리에 고인 빗물을 찍은 사진이다.


비가 내려 길가에 듬성듬성 패인 부분에는 물이 차 있었다.


비 오는 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뒤 원래의 풍경과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고인 물 웅덩이를 보며 그와 상반된 이미지인 '비산하는 결정'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위의 사진처럼 무엇인가가 깨져서 튀긴 듯한 느낌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였다.

 

고인 물 웅덩이 속에서 비산하는 무언가.


우리의 마음속은 반대되는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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