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지 않을 나의 음악들을 위하여
글과 마찬가지로 노래 안에서도 서사가 존재한다. 노래의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흘러가려면 본질적으로 가사가 중요하다. 물론 가수의 음색, 노래 가사를 전달하는 가수의 개성, 창법 등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사의 내용 자체가 없다면 단어의 파편들로 분절되어 뚝뚝 끊어질 것이다.
곡 안의 이야기는 대개 아티스트 개개인의 경험에 의존한다. 그들이 보고 듣는 다양한 것은 곡의 근간에 깔려 있다가 압축된 언어와 호흡으로 발현한다. 어떤 가수는 겉으로 이를 표출하기도 하고 다른 가수는 이를 비유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이 경험한 것을 곡에 녹여낸다.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정서적으로 다양한 반응을 한다. 청자가 노래에 공감할 수 있을 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는 참 간단하면서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저마다 한정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각자의 경험은 극히 일부분이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다수가 경험한 일들을 찾고 이를 노래로 만들어 리스너로 하여금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은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두루뭉술 해진다. 더불어 노래를 전개하며 개인적인 경험 속을 파헤치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내기보단 그저 평이한 이야기로 쉽게 잊히기 쉽다.
정반대로 자신만의 관점에 입각하여 아티스트 개개인이 자닌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전개한다고 가정해보자. 처음 몇 곡은 자신만의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티스트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전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쳇바퀴를 도는 듯한 기분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다, 어느 순간 자기 복제된 비슷비슷한 음악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음악에 있어 번아웃과 회의감을 동반한 슬럼프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많은 아티스트들은 책, 영화, 그림, 강연 등의 간접 경험을 통해 곡에 대한 영감이나 소스를 얻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이를 재해석하여 시각화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루와 같이 흩날리는 느낌, 부스러지는 알맹이 등의 질감을 자신의 창작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가수 자신에게도 새로움을 부여한다.
나는 위의 방법으로 책을 선택하였다. 노래 노르웨이의 숲은 소설책 '노르웨이의 숲'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들 중 처음 접한 작품이기도 하며 강한 여운을 감돌게 한 글이었다. 고요한 숲의 이미지와 부제인 상실의 시대가 주는 절묘한 느낌. 읽고 나서 아련한 여운이 잔잔하게 감돌았다. '무언가의 부재', '고요한 숲'. '짙은 초록' 등 다양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휘감고 지나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좀 더 구체화하여 재구성한 노르웨이 숲의 풍경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노르웨이의 숲을 주제로 하나의 이야기를 써보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한 후, 책을 다시 짚어 들었다. 책에서 한 번에 와닿는 강렬한 포인트들을 캐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을 다시 나의 언어들로 재구성하였다.
책과 비슷한 감정을 내가 겪은 일화로 표현하고 이를 압축하여 가사로 써내려 갔다. 노르웨이의 숲은 가사를 쓰는 데 있어서 다른 작업물에 비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사를 쓰고 나니 처음에 생각했던 숲의 이미지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5번 정도 가사를 갈아엎고 다시 썼다.
그러한 결과 몇 번의 계절을 지나가며 겪었던 일화들과 감정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었다. 약 3분 간의 시간 안에 수년간에 걸쳐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응축해 녹여냈다. 무질서한 감정들을 한데 모아 풀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감정의 날을 세밀하게 살펴보다 보면 어떤 감정은 너무 날이 서있고 어떤 감정은 너무 뭉툭하여 같이 세워두면 삐뚤 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들을 균등하게 분배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탄생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코끝에 벤 풀냄새가 독해
질 즘에 비워낸 후회 It's okay
뭐든 잊히기에 결국 그 끝엔
의미 없이 맴도는 건 시간 뒤를 쫓지
늘어진 잎사귀를 휘감는 바람이
기억 속 풍경을 눈앞에 담기엔
이미 너무 컸지 재촉하지 발길
회색빛깔 가로등이 휘어지네 밤길
뜬 눈으로 맞이했던 그때 새벽 두시
선명하게 보인 꿈에 자신감을 샀지
꿈에서 깬 후에 그렇게 또 새벽 네시
초조함을 곱씹으며 어제 털어 넣지 봐
목표는 작아져 그제야 현실을 봐
추억은 사지만 그걸로 사는 게 아니지
혼자 남은 숲에 이제 넘어가는 페이지
익숙하더라도 베이지 가끔 날카로운 끝에
그 즈음을 잊고 자는 너는 새벽 두시
또 다른 넌 밤을 부딪히며 잔을 셌지
잠에서 깨 뒤척여야 했던 어젠 네시
다른 칸에 타있는 듯 하루를 흘겼지
나의 숲은 깊어 너무 이 노랜 끝내
벗어나지 못할 거야 저기 가지 끝에
걸친 채 맴돌던 몇 년 간의 늪에
점을 찍어야 될 땐가 책을 이만 덮게
내 빛 여름
속에 젊음
수양버들
흔들린 걸음
흙 묻은 아스팔트
비스듬 먹구름
머금은 미소는
다른 말로 설움
비추니까 같은 것은
거울
밑져봐야 본전인데
왜 안 했을까요
요 근래 너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수십 번
찢었지 네 가식적 입꼬리
잡고 지저귀어줘
여기서 더 울려 퍼지게
내가 보는 하루는 숲
나무랄수록 드리운 그늘
깊어지는 여름
내가 화가라면
여길 모두 물들일걸
겨울
휘날리는 눈발 속에
희미해져 전부
이것 또한 연극
막이 내려 결국
후회 치는 파도들에
휩쓸려서 전부
가라앉기 전에 보자고
가진 건 실낱같은 기억뿐
아마도
노르웨이의 숲 안에 상반된 계절을 품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을 녹이고 그 계절과 관련된 일화들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 일화들이 저마다의 상실감을 안고 있도록 하였다. 다만, 그 상실감이 겉으로 지나치게 표출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기조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하였다.
'회색 빛깔 가로등이 휘어지네 밤길'
'다른 칸에 타있는 듯 하루를 흘겼지'
'수양버들, 흔들린 걸음, 흙 묻은 아스팔트, 비스듬 먹구름'
'휘날리는 눈발 속에 희미해져 전부'
이야기를 풀어낸 후 그와 관련된 감정들을 비유적으로 서술하였다.
'혼자 남은 숲에 이제 넘어가는 페이지 익숙하더라도 베이지 가끔 날카로운 끝에'
'나의 숲은 깊어 너무 이 노랜 끝내 벗어나지 못할 거야 저기 가지 끝에'
'걸친 채 맴돌던 몇 년 간의 늪에 점을 찍어야 될 땐가 책을 이만 덮게'
'후에 치는 파도들에 휩쓸려서 전부 가라앉기 전에 보자고 가진 건 실낱같은 기억뿐 아마도'
그 당시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애정을 쏟은 곡이다 보니 지금까지 애착이 간다. 훗날 이곡을 회상할 때 그저 나만의 메아리로 맴돌지 아니면 어떠한 울림을 만들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진심을 담은 이야기와 그 안에 실린 감정들이 듣는 이에게 오롯이 전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