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흐르는 계절 속 음악들 ‘날’과 ‘ㅠ’

팔리지 않을 나의 음악들을 위하여

by 한 율

코레아트 골방환상곡 앨범 커버 아트워크


계절은 시간과 함께 쉼 없이 흘러간다. 시간을 통해 계절을 추측하듯 가끔은 계절을 통해 시간을 추측하기도 한다. 흘러간 지난 계절과 다시 돌아올 계절 사이에 우리는 서있다. 우리는 계절과 같이 흐르며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계절은 우리의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은 계절과 함께 발을 맞춰 나아가야 하기에 그 안에서 경험한 감정들을 음악으로 담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2개의 곡은 2년 전인 2020년 장마철 여름밤 탄생하였다.


이번 글은 2020년 8월 15일 날 발표한 골방환상곡에 수록된 1번 트랙인 '날'과 2번 트랙인 'ㅠ'의 음악 작업기이다. 세찬 비가 내리면 빗소리에 가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듯이 두 곡 모두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한 곡이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 생각나는 곡이기에 이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두 곡에 담긴 계절과 작업할 당시의 감정,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던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코레아트 골방환상곡 트랙리스트

01. 날

가사)

오늘도 나의 밤
모든 나의 시간
모든 걸 날 위한
어쩌면 마지막

오늘도 나의 밤
모든 나의 시간
모든 걸 날 위한
어쩌면 마지막

오늘도 나의 밤
모든 나의 시간
모든 걸 날 위한
어쩌면 마지막

나약한 순간들을 모아줬음 해
하루 정도는 끌어안고 잘 수 있기에

나약한 순간들을 떨쳐냈으면 해
하루 정도는 걱정 없이 잘 수 있기에


옅어지다가 흩어진다
날 잊기 위해 또 있기 위해

옅어지다가 흩어진다
날 잊기 위해 또 있기 위해

What are you so afraid of?
Is it love or wasting your time?


비로소 나의 밤, 흐릿해질 시간
뒤로 돌리지만 그 역시 나니까

비웠던 나의 밤, 흐릿해진 시간
난 아직 나지만 그래서 나니까


코레아트(Coreart) - 날(nal)



02. ㅠ

가사)

내 슬픔은 죄다 가식
너의 뒷모습같이
무언갈 머금은 하늘 위 구름같이
떨어져

많은 말이 고여와
의미 없이 맴돌아
아무것도 해답이 되진 않아
아무것도 해답이 되진 않아


많은 말이 고여와
의미 없이 맴돌아
아무것도 해답이 되진 않아
아무것도 해답이 되진 않아





내 슬픔은 죄다 가식
너의 뒷모습같이
무언갈 머금은 하늘 위 구름같이
떨어져




내 슬픔은 죄다 가식
너의 뒷모습 같지
무언갈 머금은 하늘 위 구름같이
떨어져

코레아트(Coreart) - ㅠ(U)



장마철 풍경, 사진: 한 율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마철 여름밤, 습한 새벽이었다. 어둠 속 거센 빗줄기가 지면에 부딪혀서 나는 빗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비는 사계절 내리지만 장대비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유독 잘 어울렸다. 방 안에는 검은 어둠이 짙게 껴 창문 밖 빗줄기가 눈에 띄게 보이진 않았지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로 미루어보아 세찬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이 쏟아지는 새벽녘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ㅠ'라는 단어가 뇌리에 맴돌았다. 그리고 'ㅠ'라는 단어와 빗소리를 연결 지어 떠오르는 감정들을 적어보았다. 그중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들을 모아 위의 '날'과 'ㅠ'라는 2개의 곡이 탄생하였다.


비를 동일한 중심 소재로 삼아 두 개의 곡을 동시에 작업하였다. 음악에 나오는 빗소리 중 일부는 실제로 장마철 내리는 빗소리를 직접 녹음하여 곡에 삽입하였다. 물론 직접 녹음하는 것보다 양질의 사운드 샘플을 구해 곡에 입히는 방법이 간단할 수 있지만, 곡을 만들 당시의 현장감을 그대로 곡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 비 오는 날 거리에서 들리는 빗소리, 지나가는 차가 튀기는 빗방울 소리 등을 녹음한 뒤 가장 적합한 소리를 곡에 사용하였다.


첫 번째 곡인 '날'의 경우, 그날의 감정을 담기 위해 최대한 러프하게 작업하였다. 먼저 투박하게 녹음된 날 것의 소리와 마이크를 통해 고르게 전달된 소리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마이크를 통해 깔끔하게 표현되는 소리보단 노트북, 휴대폰 등으로 잡음이나 노이즈가 낀 러프한 소리가 감정 전달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데모 버전으로 읊조리듯 힘을 빼고 녹음했던 음원파일을 사용해 '날'이라는 곡을 완성하였다. 음악에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떨어지는 빗소리와 동화시키고 싶어서 들릴 듯 말 듯하게 사운드를 작게 조절하였다. 이러한 사운드에 대해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의도하였던 바가 분명하였기에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릴 것 같다.


두 번째 곡인 'ㅠ'의 경우, 내리는 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을 먼저 정리한 뒤 작업을 시작하였다. 또한 이 곡은 자주 들었던 가수인 XXXTENTATION가 발표한 I don't wanna do this anymore를 리믹스한 곡이다. 그래서 원곡에서 표현된 멜랑꼴리 한 감정의 연장선을 이 곡에 재해석하여 담고 싶었다. 그래서 떨어지는 비와 창틀에 튀는 빗방울에서 '뚝뚝', '슬픔', '갈등'이라는 키워드를 추출하였다. 이렇게 정리한 세 개의 단어들을 바탕으로 어떠한 상황을 가정하였다.


빗줄기, 사진: 한 율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회색빛 풍경 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길을 걷고 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스스로 분간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감정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비 오는 풍경을 관찰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비 오는 날, 하나의 빗줄기가 창틀에 닿으며 다양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튀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빗줄기를 뚫고 빠르게 달리는 차들은 빗방울을 사방으로 튀겼다. 비 오는 날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가정한 상황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답을 구하지 못하고 갈등하거나 방황하는 상황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기조로 하여 'ㅠ'라는 곡을 완성하였다.


그렇게 두곡을 낸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짧고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 8번의 계절이 흐르며 다시 여름이 돌아왔다. 노래처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오랜만에 흘러간 계절의 감정을 다시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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