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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Apr 04. 2024

소설 - 망각의 시간 속에서

(1부) 3.



3

     

집에 돌아오니 동생 손에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 손 왜 그래?

     들레는 자기 손에 붙인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군데군데 피가 통하지 않아 손이 하얗게 변색되었다.

     - 아. 이거? 손에서 떼니까 자꾸 시간이 6시 42분으로 되돌아가서.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의 시간은 9:46이었는데 동생은 8:22이었다. 각자 시간이 멈추고 휴대촌을 곁에 둔 만큼 시간이 흐른 걸까. 나는 오기 전 자전거 주인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 아무래도 우리한테 닿으면 움직이는 거 같아. 물건도. 사람도.

     문뜩 몸에서 폰을 떼놓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46분. 시간이 멈추고 3시간 하고 4분이 흘렀다. 들레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굳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엄마 아빠 보러 가자.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 될 거 같아.

     그 순간, 짧게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였을까. 검은 머리칼, 뽀얀 피부, 웃을 때마다 귀엽게 갈라진 이빨. '왜긴 왜야 엄마아빠보다 그 남자가 더 보고 싶은 가보지.' 나의 메타인지가 일러주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멈췄는데 엄빠를 뭐 하러 보러 가?'냐는 불효녀의 마음을 자책하고 꿀꺽 남자 모습을 마음으로 삼켰다.

     - 그래 가자. 근데 너 아빠 어디서 일하는지 알아?

     우리는 아빠가 어디서 일하는지를 몰랐다. 아빠는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꺼려했다. 그건 나도 동생도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고, 때문에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종종 오가는 대화에서 추측할 뿐이었다. 동생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 전에 삼성역 근처라고 했었는데... 

     아빠가 다니는 직장에 대한 여러 추리를 끝마치고 이동수단을 묻는 나의 다음 질문에 동생은 휴대폰을 만지다 말고 배시시 웃었다.

     - 나에게 다~~ 생각이 있지.

     동생이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오토바이 가게였다. 저벅저벅 어두운 오토바이 가게로 들어간 들레는 주인아저씨 팔에 손을 대더니 한참 동안 무슨 기름을 넣을지, 주의할 점이 뭔지, 어떤 헬멧이 좋은지 추천을 받고 내게 열쇠를 던졌다.

     - 언니! 타!

     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열쇠를 던진 동생을 얼빠진 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오토바이 지지대를 발로 차고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를 내가 몰 수 있을까...

     - 스쿠터는 타봤어도 오토바이는 처음인데...

     동생은 내 말을 듣더니 한껏 들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 아니? 언니. 난 언니를 믿어. 이건 최고의 선택이야.

     정말이었다. 그건 동생이 내린 몇 안 되는 좋은 결정 중 하나였다. 오토바이 운전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퇴근길 버스와 차로 빽빽한 도로 위를 부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동생이 뒤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 꺄~ 기분 좋아~ 삼성역으로 렛츠고~!

     엄마도 아빠도 소주와 괴로움에 눈물짓던 때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가게 형편이 조금씩 어려워졌다. 건물 2층까지 성황리에 운영했던 가게가 어느새 빚더미에 파묻혔다. 더는 지속할 수 없었고,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우리 가족은 온갖 장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대학생활이 힘들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가 많이 외롭고 힘들 테니. 전화하면 위로해 줘."라는 말이 돌아왔고, 엄마에게 전화하면 "아빠가 많이 힘드니까 잘 위로해 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그럼 대체 나는 누가 위로해 주냐는 어린 마음은 늘 듣는 이 없는 가슴 한편에 먼지처럼 쌓여갔다. 하루는 오랜만에 돌아간 집에서 잔뜩 취한 아빠가 나에게 결심하듯 소리쳐서 왜 저러나 싶었다.

     - 나 이제 친구든 선후배든 경조사 다 안 갈 거야!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뭐 저렇게 소리 지르나. 그러든지 말든지. 짜증이 났다. 철없던 이십 대를 열병처럼 앓고 삼십을 조금 넘어서야 조금씩 아빠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빠의 그 말은 “경제적으로 내몰린 내가 지금 너무도 좌절스럽고 괴롭다”라는 말이었다. 아빠의 씁쓸한 미소를 이해하게 된 시점부터 더는 아빠와 싸우지 않았다. 

     여러 생각과 함께 순식간에 삼성역에 도착했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돌아다니고서야 아빠를 찾았다. 경비 옷을 입고 일하는 아빠의 모습이 처음이었다. 마음이 조금 울컥하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고 묘했다. 아빠의 손을 잡자 아빠의 두 눈이 요동쳤다. 아빠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정신없이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 어? 뭐야! 니들이 왜 여깄어! 근.. 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우리는 아빠를 꼭 껴안았다. 따듯했다. 아빠 품에 안겨서 아빠에게 말해주었다.

     - 아버지.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빠도 우리를 꼭 껴안아 주셨다.

     - 나도. 우리 딸들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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