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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Jun 18. 2023

직장 내 폭력에 노출되다

옥계 근무 일지 2

사무실 문을 나가는데 카로운 것이 손등에 박혔다. 분명 갈굼의 대상은 나였는데 애꿎게도 과녘을 문입구 생수통 옆에 있던 물병과 유리컵이 되었다. 작고 간사한 흉기처럼 유리 조각은 바닥에 널브러졌고 노출되어 유리파편이 꽂힌 손등과 발목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상황, 너무 무서워 떨고 있는데 옆부서 직원이 보호하듯 어깨를 감싸 안아 의자에 앉혀 주었다. 또 다른 직원은 구급상자를 가져와 응급처치를 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나를 향해 뭔가를 던진 김대리는 분에 못 이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업무를 똑바로 하란 말이야.


갓 입사한 직원이 업무 숙련도가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김대리는 수시로 인사노무와 관련된 수치들을 물어봤고 대답을 못하면 화를 냈다. 그보다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그가 윗사람에게 질책당하는 날이면  눈에 띄는 즉시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사무실 빠져나가 남은  사람은 김대리와 나뿐이었다. 사무실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와 전화로 언성을 높일 때부터 불안했다. 그의 목소리는 중저음에 가늘고 허스키한 음성이 중첩되었는데, 화를 낼 때면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사무실 여기저기를 쑤시는  같았다.


평소 같으면 숫자는 잘 기억하는 편이라 그가 물은 것을 얼른 답했을 텐데,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 파일에 정리해 두었으니 갖다 드릴게요.


말하고 나서 외부 전화 응대를 먼저 했다. 그런데 도히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김대리는 바로 내 뒷자리였고 자기를 무시한다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수화기조차 제대로 놓지 못하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가려는 찰나였다. 결국에는 탈출에 실패했다. 오랫동안 그 사무실을 나서지 못하고 때때로 남몰래 울거나 침묵했다.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장에서 대낮에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던지고 화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행하는 일은 더더욱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현장 쪽 일을 잘 처리하고 쥐락 펴락을 잘하는 능력자로 둔갑되어 직장생활이 탄탄대로였다.


- 미안해. 내가 그때 좀 심했지?


김대리는 회식 자리에서 잔을 채워 주며 가볍게 사과를 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나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는 사람이구나. 그때의 나는 저항할 힘이 없었고 맞받아칠 말조차도 찾지 못했다. 밥을 못 먹고 악몽을 꿀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려도 주말에 집에 가서는 잘 지내는 척해야 했다. 나만 견디고 지나가면 비 갠 맑은 날씨처럼 사람들은 다시 평온함 속에 지냈다.


김대리 연봉을 높여 이직기 전까지 일 년 반을 더 같이 근무했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만 나 역시 약하디 약한 채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마음 깊숙이 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시간이 많은 것들을 키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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