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는 열애 중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짝사랑에 가까웠다. 상대는 영혜의 존재를 알지만 일방적인 마음 표현이라고 여겨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영혜에게는 상관없었다. 같은 부서인 데다 업무적으로 같이 처리할 일이 많아 근무 시간에도 손을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었다.
문제는 허대리가 부친상을 당해 일주일 자리를 비우면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며칠 못 본다고 생각했었는데 삼일째 되는 날부터 영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수천 쪽으로 난 숙소 창을 열고 밤새 우울해하다 늦게 잠들다 보니 출근이 늦어졌다. 얼굴도 누렇게 떴다.
물론 영혜의 연애사는 입사 및 숙소 동기인 미주랑 나만 아는 일이긴 하지만, 유복자로 태어나 아빠 없이 자란 영혜에게 남자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어떤 계기로 상대가 바뀌는지 알 수 없어도 영혜의 짝사랑은 등장인물만 달라질 뿐 지독한 마음 앓이를 남겼다.
영혜의 상사병은 금요일 퇴근 무렵 극에 달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강릉 본가로 들어가는 게 보통의 일정인데, 영혜는 숙소에서 사랑의 열병으로 앓아누웠다.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미주랑 어찌할지 몰라 머리에 젖은 수건도 올려놓고 손도 어루만져 주며 괜찮냐고 계속 물었다.
영혜: 가고 싶어!
소혜: 어딜?
영혜: 안동......
맙소사! 영혜는 기어코 허대리를 봐야 기운 차릴 것 같았다. 실천력 강한 미주가
- 그래 가자!
외치는 순간 영혜는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택시를 불러 옥계역까지 나오는 시간은 불과 한시간도 안 걸렸다.
허대리는 병산서원 근처에 산다고 들었다. 주소는 이미 영혜 씨가 알아봐 안동역까지 기차로 간 뒤에 버스 타고 들어가면 됐다. 이동 수단과 경로까지 영혜는 진작에 확인해 두고선 혼자 갈 엄두가 안나 우리를 앞세웠던 것이 분명했다. 못 이기는 척 함께 가기로 한 것은 영혜가 겪는 사랑앓이가 단순한 감정을 떠나 유년의 결핍된 아픔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마음에 고여 있는 눈물처럼 우리의 이십 대를 흔들어 놓는 불안의 요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시간을함께 견뎌 내는 있기에 약속이나 한 듯 병산서원 가는 길을 어느 새 걷고 있었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안동에서 서남쪽 낙동강 상류 굽이치는 곳을 등진, 서원 가는 길은 수다스러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량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걷히고 나면 마치 시간여행을 해 조선후기 어느 시대 즈음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오락가락, 지친 걸음에서 오는 땀과 서원에 어서 도착해 쉬고 싶은 마음이 엉켜 마치 서원 입학을 간절히 원하는 서생들이 된 듯싶었다.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기존 학생들의 동의만 있으면 입학이 가능했던 것이 서원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의 입학은 가능했을까 싶다. 그 시대라면 더더욱 차별과 편견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 나는 경제의 이치를 배우고 싶어. 이 지긋지긋한 가족 부양에서 벗어나 돈 많이 버는 법을 배우면 좋겠어.
가족의 경제축이었던 미주는 만대루를 바라보며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드러냈다.
- 돈보다는 사랑이지. 그냥 사랑하는 님이랑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전기수가 되고 싶어.
영혜는 허대리에게 전화할 용기도 없으면서 여전히 사랑타령이었다. 연애 소설을 진작에 좋아하는 친구라 격정적인 이야기꾼이라 아녀자들이 홀딱 영혜의 이야기에 넋이 나갈 듯싶다.
두 친구에게는 드러냈지 못했지만 나는 원래 시를 배우고 싶었다. 남장이라도 해서 병산서원에 칩거한 학자의 제자가 되는 꿈을 꿨다. 쉽게 가르쳐 줄리 없겠지만 허드레일을 하면서라도 병산서원을 떠나지 않고 버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방문객들의 소란스러움에 만대루를 바라보며 각자의 꿈을 좇던 우리의 상상도 끝이 났다.
- 그만 가자!
영혜는 그늘진 처마 아래서 무슨 각오를 다졌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허대리집으로 가는 거야?
- 아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영혜는 마음 앓이를 수습하는 중이었다. 연모의 대상이 이후에는 무엇으로 누구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처마 그늘에서 목을 축이고 나서 영혜는 되돌아가는 길을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