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

by 지소혜

여러 날 계속 비가 내렸다. 버스가 7번 국도를 따라 미끄러지듯 다른 시공간을 향하는 느낌이었다. 단 한 명의 승객은 불안하듯 차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며 세차게 내리는 비를 간신히 피하고 있었다. 옥계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바람까지 동반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를 들이밀며 사회생활을 늦추고 싶었다. 학교와 집을 오고 가는 소소한 일상에서 책과 씨름하는 시간들이 그리웠다. 마치 장마가 한창일 때 떠다니는 부유물이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떠밀려 내려가는 듯했다.


빌려 입은 옷 곳곳에 빗물 얼룩을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생경한 마음이 온몸을 겉도는 옷으로 인해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었다. 교복을 입으면 학생답기라도 할 텐데 모시 질감이 섞인 여름 원피스는 빗물 흔적을 털어내기는 커녕 움직일 때마다 불필요하게 사그락거렸다. 다리를 붙이고 앉았는데 치마 끝단은 자꾸 들떠 면접관 앞에서 결의에 찬 사람처럼 양손에 힘을 쥐었다. 나도 모르게 치마를 무릎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여름 장마가 지나가는 열아홉, 고등학교 졸업 전에 어설픈 사회인의 통과의례를 겪고 있었다. 아무도 알 길 없는 순간의 기억 속에서 오롯이 내 몸을 겉도는 푸른빛 원피스 숨어 있었다. 낯선 남자들의 눈초리는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묻기보다는 어리숙한 앳된 미소를 확인하며 순종적인 면모를 점검했다. 회사의 현황을 호기심 가득하게 물어보는 나의 질문이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눈썹이 짙은 총무부 상무 대답 대신 질문은 네가 하는 게 아니야 라는 표정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이르게 시작된 직장 생활은 비에 질척거리는 거리처럼 불편하고 낯설었다. 학교 추천으로 면접을 보고 합격된 뒤에도 그만둘 때를 기다리며 회사를 다녔다.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 채 신입사원 교육을 몇 개월 받고 나서 현장부서로 발령이 났다. 현장은 먼지가 많이 일어나고 사고 위험이 있는 해안선 쪽에 있었다. 그 항만 현장 쪽 입구에 페인트칠이 되어 있지 않은 건물이 있었다. 날 것의 느낌으로 서 있는 2층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바다는 코 끝을 갖다 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옥상 출입문 입구에 놓인 커피 자판기에서 밀크 커피를 한 잔 뽑았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바다를 무작정 바라볼 때가 많았다. 커피는 더딘 속도로 식어갔는데, 가슴을 후벼 파던 눈물이 종이컵 안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른 사회생활은 하루를 멀다 하고 질책과 분노의 감정 받이처럼 고단했다. 이곳까지 오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후회의 한숨이 거듭 새어 나왔다.


장마 부유물은 하천 일대를 떠돌았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했을 물건들은 이미 진흙이 잔뜩 묻어 쓸모가 없어졌다. 빗줄기가 잠잠해져 간다. 날씨가 개이고 나면 시간이 재배열되듯 간절히 원하고 바라 기억의 장소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유동 인구가 드물고 과거의 영광에서 물러나 있을지라도 내 흔적을 담은 부유물을 찾아보고 싶다. 여름 장마가 한창일 때 버스에서 내린 옥계에서 먼저 다가 온 사람들이 있어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