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살아보니까 사는 게 쉽지 않아요. 즐거울 때도 있지만 버거울 때가 더 많아요.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부러워하는 마음이 제일 심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것을 드러내고 살면 제 인생이 너무 초라해지고 세상에 잘 닻을 내리고 살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죄송해지잖아요. 그래서 좀 과장되게 잘 사는 척, 괜찮은 척하며 그냥 살아가요.
아빠는 그곳에서 좀 더 편안하게 지내시죠? 우리 키우느라 살뜰히 가정경제 일구시고, 틈틈이 공부 병행하느라 잠도 적게 주무시고 늘 정리하고 살피며 할 일을 찾아내는 부지런한 아빠 모습이 떠올라요.
살아보니 한없이 게으르고 싶어질 때가 더 많아요. 여러 문제가 엉켜 한시도 풀리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어요. 다 그만두고 조용한 곳에 내려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에 그런 곳은 없더라고요.
깊은 밤까지 먹을 갈고 하루의 소회를 붓글씨에 담아 세상의 응어리를 한시로 풀어내며, 선인의 글귀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그것이 아빠가 버티는 방법이었구나. 그 흔한 취미 없이 오로지 하루 일로 지칠법한 몸과 마음을 글로 쏟아내는 아빠 모습을 제가 닮아가고 있어요.
누군가 읽지 않아도 묵묵히 써내는 마음은 자신을 다독이고 있나 봐요. 한결 편안해지고 불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 문제들이 보잘것 없이 보이기도 해요. 그냥 내가 갖지 못한 것, 어릴 적에 그런 환경을 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했던 것들보다 제가 주신 많은 것들을 아빠가 이 세상에 없고 나니 깨닫네요.
함께 헤쳐가라고 형제자매도 주시고, 여전히 우리 곁에서 아빠몫까지 해 내는 엄마를 응원하시고, 소박한 것에 감사하며 즐거움과 기쁨을 찾는 마음을 주시고, 상황에 흔들리기보다 주시하고 찬찬히 풀어가는 지혜를 주시고, 무엇보다 긍정의 힘을 믿는 강한 정신력을 만들어주셔 여태껏 살아온 시간에 결코 억눌리지 않도록 아빠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빠, 잊지 못하는 기억 하나가 있어요. 제가 잠깐 책 만드는 일을 해 제 이름이 편집자로 들어가 제법 여러 글이 실린 책자를 돋보기안경까지 쓰며 읽고 흐뭇해하셨잖아요. 회사가 어려워져 그 일이 몇 달의 꿈처럼 사라졌을 때도 누구보다 속상해하신 것 알아요. 늘 무슨 일인가 하고 나면 평가를 하기보다 그저 지켜보고 응원해 주신 아빠 모습이 떠올라요.
세상에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영원한 내 편들, 홀로 객지생활하다 툭하면 집에 오던 때라 비교하면 제법 많아졌어요. 그래도 제게는 아빠가 제일 소중한 내 편이에요.
언니가 가족 단톡방에 아빠 생신을 알리고 나서 오늘은 아빠를 다른 어떤 날보다 자주 그리워하려고요. 오늘도 일하는 일요일인데 아빠 생각하며 힘듬도 날려 버릴 거예요.
곧 아빠의 기일이라 기차표를 예매해 놓았어요. 가을 산새가 아빠가 계신 곳을 예쁘게 물들이고 있는 중이겠죠. 우리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아빠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즐거운 것들 많이 찾아 한없이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제 마음 담는 일기장에 툭하면 아빠 찾아가 늘 그랬던 것처럼 쉴 새 없이 하소연할게요.
어릴 적처럼 요란스러운 생신상을 차려드리지 못해도 아빠가 남긴 흔적들, 그 기운을 받으며 살아갈게요.
하늘나라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셋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