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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Oct 30. 2022

코스모스 피는 시간

화학 시간만 되면 내 마음에 코스모스가 핀다. 선생님은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곱게 빗고 이마가 반쯤 가려진 헤어스타일이다. 머리카락이 조금 시야를 가린다 싶으면 검지와 중지로 살며시 넘기거나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 모습이 가을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를 닮았다.


줄기차게 선생님 근처를 배회하는 터라 전교생이 나의 짝사랑을 다 안다. 멀리서 보면 구가 작은 가녀린 여선생님 같지만 얇은 눈까풀 주변을 감도는 차가운 시선에는 남자다움이 배어있다. 여느 친구들에게는 서늘한 분위기가 재수 없다지만 반년 가까운 묵묵부답의 반응에도 나는 때에 맞는 선물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일찍 등교해 선생님 책상을 닦았고 학교 앞 꽃집의 단골도 되었다. 선생님 생일은 물론이고 수시로 소한 간식을 갖다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화학 내신 등급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수학도 선행 없이 진도 나가는 데까지 겨우 문제집 풀고 채점하고 나면 반타작의 결과를 얻는 마당에 화학이라고 해서 점수가 잘 나올 리가 없다. 수업 내내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기보다 작은 제스처 하나라도 안 놓치려고 선생님을 움직임을 따라 시선 옮겼다.


- 24번 집중해!


선생님은 판서를 하면서도 필기는커녕 턱을 괴고 선생님 바라기만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몇 반 누구고 이름은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책상 위 선물에 이름 석자를 눌러쓰고 하트까지 그려 넣는데 내 이름을 모를 리 없었지만 한 번도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결혼도 했다. 입학식 다음날이 선생님 결혼식이라 일주일간 학교를 안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상관없다. 그 단정하고 예쁜 머리를 아내분이 손질해 준다고 소문이 났어도 학교에서 만큼은 선생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내 짝사랑은 누구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그러다 스토커 된다고 관두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상담 주간에 공부 신경 쓰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선생님에 대한 연모가 멈추지 않자 엄마의 호출을 단행했다.


엄마가 교무실에서 상담을 하고 나온 뒤에 우리 반 교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쉬는 시간이라 잠깐 보고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따로 나가 보지 않았다. 그때 화학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었다.


- 귀찮게 해 드려 죄송했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그동안 받아주셔 감사했습니다.


더 이상 화학 시간에 코스모스는 피지 않았다. 안 하기로 마음먹자 거짓말처럼 향하던 감정도 메말랐다. 무언가의 결핍 혹은 갈증이 물을 벌컥 마시게 했나 보다. 화학 선생님이 판서하다 말고 힐끗힐끗 나를 보는 듯했지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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