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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Nov 14. 2022

아빠와 헤어지고 난 후 삼일째

나의 사랑 나의 가족

새벽 3시, 조문객은 없다. 집보다 온기가 있는 장례식장에서 모두 자고 있다. 여기서 온기는 아빠가 남긴 지상의 흔적들처럼 후끈후끈 마음을 데운다. 일하는 중에 받은 언니의 문자가 이 모든 의식의 시작이었다.

- 아버지. 돌아가셨다. 8시 55분.


임종을 지킨 자녀는 아무도 없다. 연락받고 부랴부랴 움직인 자식 중에 내가 제일 늦었다. 나는 부모님과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지낸, 제일 나중에 독립한 셋째다. 그래서 아빠가 투병할 때도 상황이 여의치 못해 자주 못 찾아뵙던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나마 아빠가 말씀도 하시던 모습을 사진으로조차 남기지 못했다.


부고를 알리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전화받고 어떻게 절하고 어떻게 조문객을 맞는지 서툴렀다. 상복을 입은 스스로의 모습도 낯선데 어느새


-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조아리고 절을 하며 슬픔을 위로해 주는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오랜만에 아니 아니 처음으로 온 가족이 다 모인 자리였기에 평생 나눌 대화를 오늘 몰아서 했다.

정작 우리 형제들이 어릴 적에 수다스럽게 얘기 나누고 있으면


- 그만 떠들고 자!


호령하던 아빠는 없었다.


아빠의 나이 듦을 분명히 인식했던 때가 생각난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가끔 아빠가 마중 나왔다. 집까지 가는 200미터 정도의 길은 가로등이 없는 외길인데, 좀 무서웠다. 숨도 안 쉬고 내달리거나 정안 되면 일이 바쁜 아빠한테 못 부리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 아빠, 좀 나와주면 안 될까?


그 길 끝에 아빠가 서 있다고 생각하면 무슨 힘이 났는지 무서움이 로켓으로 변해 단숨에 집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날은 나와 있겠다던 아빠가 안보였다. 밤안개가 기분 나쁘게 깔려 여느 날보다 공포가 밀려와 숨을 턱밑까지 참으며 뛰어왔는데 말이다.


- 아빠! 아빠! 어딨어?


그날 아빠는 일이 잘 안 풀렸나 보다. 많이 지쳐있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짓눌린 듯한 작은 체구는 여태껏 봤던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큰 산 같았던 아빠는 하는 일이 실패할 때마다 깎이고 깎여 오르기 조차 민망한 낮은 민둥산처럼 초라해져 있었다.


아빠는 거동이 불편한 채로 기본적인 주변 처리가 힘들어지자 치료 자체를 저항했다. 더 나아지려고 했던 치료들이 아빠의 몸에서는 힘을 생성시키지 못했다.

아빠가 국화 꽃밭에 서 계신다. 아직까지는 가까이서 얼굴을 뵌다. 조금 있으면 이 의식도 끝난다. 아빠를 마음 어딘가에 모시고 지상에서의 흔적들을 애써 찾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아빠를 찾다 보면 어둠 속에서


- 왔어?


하며 인기척을 내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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