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나
1편에서는 마치 중국을 싫어하면서 중국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을 싫어하면서 일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과연 왜 그럴까?' 라며,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양 전지적 시점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나 역시 모순적인 사람인 게,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거나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엔 분개하면서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매하려고 할 땐 일본 맥주를 꼭 잊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의 대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양면적인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정치심리학 분야의 이론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참고로 이번 편은 지루할 수 있다.
'지각(perception)과 인지(cognition)의 정보 처리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스키마 이론(Schema Theory)은 쉽게 말해 인간이 정보를 어떻게 처리를 하는 지에 관한 이론이다. 일단 개인이 정보에 노출되면, 그 개인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념 체계를 활용하여 정보를 받아 들이고, 현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전체의 과정을 '스키마'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액설로드(Axelrod, 1973)라는 학자는 스키마가 작용하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정보와 일치할 때에는 기존의 스키마가 더욱 강화되지만, 불일치할 경우에는 새로운 인지적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보수 친화적인 뉴스 기사를 접하게 되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수 마인드가 더욱 강해지고, 반대로 진보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진보 친화적인 뉴스 기사를 접하게 되면 진보 마인드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즉,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진보 친화적인 뉴스 기사를 접하게 되면
1) 해당 정보를 부인하거나("저건 가짜 뉴스일거야!"),
2) 기존의 입장을 약간 수정(현실에서 거의 그럴 일은 없다)하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스키마 이론을 통해 마라탕후루를 재조명하면 다음과 같은 가설이 도출될 수 있다.
기존에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가지고 있을수록,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진다.
∨
기존에 중국을 싫어할수록,
중국의 문화를 싫어할
확률이 높아진다.
∨
중국을 싫어하면
중국의 음식도
싫어할 확률이 높다.
즉, 스키마 이론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다수가 중국을 싫어하기 때문에
중국 음식에 대한 인기는 낮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이론으로 페스팅어(Festinger, 1957)는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을 제기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태도, 신념 또는 행동이 서로 상충될 때 나타나는 정신적 불편감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인지부조화의 사례로 1992년에 벌어졌던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이 있다.
당시 다미선교회의 목사는 '1992년 10월 28일'을 점찍어 해당일에 휴거가 발생한다는 휴거론을 내세웠다.
당시 신도들은 목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어 직장을 나오거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는 등 휴거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거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휴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믿음을 버리지 못한 이들 중 일부는 나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나방이 휴거되고 있다며 나방을 쫓거나, 자신들의 기도가 부족해서 휴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는 모습을 보였다.
즉, 본인의 신념과 현실이 불일치할 때, 부조화라는 정신적 불편감을 제거하기 위해
1) 기존의 신념을 변경하거나,
2) 새로운 신념을 추가하거나,
3) 기존 신념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며
부조화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미선교회의 사례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인지 부조화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고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국인의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하면서,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소하려 하지 않고 각각의 의견을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셈이다.
국가의 대외정책은 권력의 크기에 따라 지도자 마음대로 휙휙 바뀔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개개인들의 의견이 모여 형성되는 여론은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있다는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라면 해당 국가와의 관계가 원활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해당 국가와 일종의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라탕후루' 사태는 외국에 대한 여론이 양가적일 때, 정책 결정자는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결국 국민들의 인지적 모순과 양가적 태도는 정책 결정 과정에 복잡성을 추가한다고 볼 수 있다. 정책 결정자는 결국 국민의 다양한 신념과 태도를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양가적 태도를 조정하거나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민들의 의견이 상충될 때, 정책 결정이 더욱더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