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 2열 종대 선도부 사이를 숨죽이며 지나간 기억과 1평도 채 안 되는 자습실 개인 공간에서 밤늦게까지 야자 한 게 전부다. 그래도 그 시절 덕분에 전력 질주하는 DNA가 몸에 배었다. 덤으로 뭐든 잘 참는 맷집도 그때부터 생겨났겠다.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를 시작해서 전역하면, 취업하면, 결혼하고 아기 낳으면까지, 복붙 한 듯한 동기부여의 연속이 지루할 만도 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험한 산을 오를 때 느끼는 육체적 고통의 임계점을 다 견디면 정상에서 기다리는 시원한 바람을 맛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어느새 인내와 집념이란 단단한 정신적 코어 근육으로 변한다. 가진 욕심에 비해 집안이니, 학벌이니 뭐하나 딱히 내세울 거 없었던 필자에게 20대 시절은 험한 산등성의 연속이었다. 금수저나 고스펙 능력자와 경쟁할 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쌓아 온 필자만의 정신적 맷집이었다.
37살이 된 올해, 맷집과 열정은 여전한데도 이 근자감은 왠지 밑천이 다한 느낌이다. 10년 차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 직속 부서장이 지시한 애매한 과제부터 불투명해 보이는 커리어 고민까지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불명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과거 성공 패턴이 먹히질 않는 것이다. 요 몇 개월 동안 잠시 숨을 돌리고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간 머릿속에는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려는 How만 가득했지, 정작 Why에 대해 소홀해하지 않았을까? 자문자답을 이어가다 한순간 이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고민 끝에 내린 대답은 결국 익숙한 몰입이었다. 10년 후 커리어를 위해 일상에서 더 몰입하기로 했다. 단,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필자만의 <몰입 2.0>은 주도적이고, 목적지향적이다. 추천받은 서적과 영상을 찾아보고 실전에도 적용해가고 있고, 브런치를 빌어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더 숙성시켜 나갈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건, 중간에 얼마든지 수정해도 좋으니 확실한 커리어 목표 설정이다. 3년, 10년 후 등과 같이 단계별로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조직 혹은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중압감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필자의 경우 최근 핫(Hot)한 OKR 기법을 개인에게 적용해 활용해봤다.
★ Objective(목표) : 5년 후, B2B 식음 유통 시장에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관리자가 되기
★ Key Result(핵심 결과지표)
1. Field영업 4년 및 지원 Staff 2년 이후 현 구매 직무의 전문성 더해 다양한 커리어 스펙트럼 갖기
2. 조직 내 중간 관리자로서 인정받기
3.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업무 경험을 엮어 인터넷 책 발행하기
TOOL은 상관없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그 길로 가기 위한 핵심(Core) 업무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자.
둘째, 시간과 에너지도 전략적으로 사용하자. 모두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열심히"는 차별화 요소가 못된다. 때론 매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과 같은 자세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대신 슬로우, 퀵, 퀵, 슬로우!! 와 같이 전략적인 에너지 분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 초반 빌드업이 승패를 좌우하듯, 아침 시간부터 달라야 한다. 습관적으로 미수신 메일을 확인하기보다 전날 중요도를 고려해 정리해 둔 자기만의 Must-do 리스트를 따라 업무를 해치운다. 필자 주위에도 업무를 내일로 못 미룬다며 야근을 즐기는 분들이 꽤 있다. 그런 업무들은 늘 애매하고 몽롱한 오전 9 시간까지 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스스로 판단해 과감히 미룬다.
셋째, 책과 SNS로부터 스스로를 노출하자. 자기 복제가 주는 편안함에 만족한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차별화를 하고 싶다면 우선 생각의 바운더리를 넓히는게 급선무다. 필자는 얼마 전 e-북을 하나 구매했다. 들고 다니기도 좋아 매일 30분 일찍 출근해 자리에서 스윽 보는데 벌써 여러 권 읽었다. 퇴근 후에는 유튜브로 직장인 브이로그를 보거나, 인플러언서를 팔로잉해 수시로 주위의 자극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
마지막으로, 현재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자.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또 그것을 위해 나는 얼마만큼 가까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혼자서만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주위에 물어보기는 더 쉽지가 않다. 현실에선 술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꼰대 선배들의 라떼 강의나 어색한 적막이 흐르는 연말 고과 면담 자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이제부터 주도적으로 평가를 받아보자. 주위 선배나 동료에게 지금 본인의 "업무 폼"이 어떤지 캐주얼하게 물어보는 것도 좋다. 경력 이직을 당장 염두하지 않아도 수시로 자신의 경력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고, 기회가 되면 외부 면접도 참여해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더욱 추천한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여러분의 일은 삶의 대부분을 채울 것이고, 진정으로 만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믿는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그리고 그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만약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고,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진정으로 하는 일이 그렇듯, 그것을 찾는 순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스티븐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 中
며칠 전 취준생 때 감명 깊게 보았던 스티븐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을 유튜브로 다시 찾아봤는데, 순간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의 업적은 흉내내기 어려울지 몰라도 일에 대한 자세는 누구든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 52시간 근무시간 제도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묻지마 야근 추종자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떤 분은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서는 퇴근하고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한다. 그래도 싫든 좋든 직장인들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결국 그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필자는 사무실 안과 밖에서 "연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워커홀릭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배우가 당일 촬영이 끝난 후에도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는 거와 같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그것이 즉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