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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말야 Mar 04. 2021

현수막에 걸린 여성들

현수막에 걸린 여성들 


동네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간결한 형태로 꽤 많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제대로 읽어나 볼까 싶은 위치였지만 좁은 동네에,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령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어플이나 메시지로 공지를 보내는 것이 더 소용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지극히 한정된 지면에서 직관적으로 말하는 형태는 곧 동네의 형태처럼 느껴졌다. 현수막은 지역, 시골로 갈 수록 동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출퇴근 길에 오고가며 자주 보았던 현수막 거치대에 못 보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에는 성*용품, 아니  단순히 성*용품이라고 할 수 없다. 여성을 본따 만든 인간 형태의 자*기구를 판매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과 모욕감을 동반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버스를 타고 지나며 가정에서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신고/상담하는 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현수막을 봤다. 나는 그저 조악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고 나와 같이 누군가는 그저 지나쳐갈 것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화를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이나 사상 전파의 의도는 없는 동네의 현수막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 동네는 여성이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혹은 이렇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무력감에 좌절한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대라면 오히려 덜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건조하고 담백한 형태, 단순한 레이아웃에 고작 몇 글자의 형태로 치열한 싸움을 허무하게 만든다. 

리** 광고 현수막을 발견했을 때, 근처 주민센터에 철거를 문의했다. 다행히 전화를 받은 직원은 귀를 씻고 싶다는 듯 역겹다는 톤으로 내 말에 공감을 해줬고 다행히 신속히 철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날 SNS에서 읽은 기사에서는 법원이 풍속을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리** 수입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혐오스러운 동네를 벗어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딜 가나 역겨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페미니즘 담론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나에게든 사회적으로든, 빼놓고는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항상 생각하고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현수막을 철거하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여성에게는 새로운 슬로건의 현수막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현수막이 없는 삶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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