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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May 13. 2024

글쓰기가 편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의 심장은 당신이 지금 해야할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배철현의글쓰기수업

#자기치유를위한글쓰기


나는 지금 나의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있는가? 왜 사는지 알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나는 나를 알고 있는가? 질문을 잘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4년 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글쓰기와 감사일기를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를 모아 알려주는 정보성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글쓰기 약속의 플랫폼으로 블로그를 활용했습니다. 당시 이유를 모른 채 끌림이 있던 교사성장학교라는 모토의 고래학교를 1년 치 회비를 내고 가입을 했고, 리더이던 최선경선생님께서 매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분이었지만 나는 그분의 모든 활동을 따라 했던 것 같아요. '실천'이라는 것을 하는 그 선생님을 '따라하기' 실천을 했던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새벽기상과 글쓰기였고, 그때의 글쓰기는 줄리아카메론의 모닝페이지 쓰기처럼 내 안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몽롱쓰기'라는 새벽 글쓰기였어요. 또한 감사일기를 썼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 집에 아직 살아 숨 쉬고 계셨습니다. 


돌아다니고 지인 만나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을 좋아했던 활동적이던 나는 코로나 19 덕분에 네 평 방 안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교사성장학교 고래학교라는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를 만났고 그곳에서 곧바로 글쓰기를 만났었죠. 


내 안의 모든 것을 '자기 검열 없이' 쓴다는 몽롱쓰기는 내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출입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나에게 질문했고 그가 대답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글쓰기였습니다. 내가 만난 것은 글쓰기. 나를 담은 글쓰기를 만났고, 나는 나를 만났고 비로소 나를 위로했던 것 같습니다. 


배철현 교수님의 블로그 글을 만난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3년 전쯤 되는 것 같아요.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내 심장이 뛰었습니다. 모르는 용어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내 심장은 어김없이 넓게 열렸고, 두근거렸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잘 공감되지 않는 벨라와 예쁜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올리시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어요. 

당시 몽롱쓰기를 블로그를 찾아보니 요렇게 배철현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 고스란히 기록이 되어 있었어요. 그렇다고 아직 교수님의 모든 글을 읽은 것도 아닙니다. 심연이라는 책을 완독 했어요. 교수님의 글은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나는 교수님이 교육에 대해 언급한 문장들이 너무 좋았어요. 교육을 정의하는 워딩이 너무 좋았고, 교육의 문제를 같은 온도와 같은 강도로 정확하게 표현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학생들 앞에 서면 늘 관리자의 임무가 크기에 교육의 임무를 자주 잊습니다. 본질을 잃고 급급한 일만 처리하며 하루살이를 해 왔던 나는 핵심에 다가서는 교수님의 글이 너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비단 교육뿐만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 항상 질문해 주셨던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사느냐? 무엇을 하며 사느냐?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 그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바냐? 늘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았어요. 


글쓰기가 편지가 되어 버리네요. 다시 교수님이 내어주신 숙제로 돌아가 봅니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글쓰기를 하며 특히 가슴이 뜁니다. 좋은 글을 만나면 가슴이 뛰고, 글을 쓰는 동안 가슴이 뛰어요. 교수님의 블로그를 요즘 통 방문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다시 가봐야겠다 싶어 방문한 상당 공지에 '자기 치유의 글쓰기 학교'를 모집하는 글을 보고 가슴이 뛰었고, 온라인이라고 해서 가슴이 뛰었으며, 아직 모집 마감이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자기 치유'도 좋았고 '글쓰기'는 더욱 좋았습니다. 지금 다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나려 하네요. 이미 나는 울어버렸습니다. 


심장이 뛰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오늘만은 '네'라고 대답하고 싶네요. 출퇴근길 운전을 하며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듣는 것은 그리 행복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을 자꾸만 내 심장에 꽂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고 내가 행복한 일을 나는 지금 하고 있습니다. 수년을 기다려 왔던 순간입니다. 늘 직장맘인 내가 닿을 수 조차 없는 더코라 공간과, 각종 강의들은 너무 멀었어요.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가끔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어제 교수님의 첫 강의를 들으며 질문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딱히 질문이 있던 게 아니라 한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터져버릴 것만 같아 참기는 했습니다. 아는 것 하나 없음이 드러날까 부끄럽기도 했고요. 


강의가 끝날 무렵 길들임에 관한 질문이 생각났어요. '왜 나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따라가며 살지 못하는가? 왜 나는 나의 끌림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가?' 그것이 궁금했어요. 아버지의 뜻을 늘 강하게 받으며 살아왔던 이유도 있습니다. 늘 밥벌이 잘하는 대학 밥벌이가 잘되는 진로를 추천하셨죠. 아버지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그랬습니다. 이익을 쫓아 가는 것은 정당하고, 이익을 쫓아 가는 데 경쟁에 뒤처지면 루저이고, 이익을 쫓아가지 않으면 별종이고, 이익을 쫓아가지 않는데 무언가를 챙기려 하면 그것도 욕을 합니다. 내 안의 시기심과 질투, 허황됨과 욕망 또한 같은 목소리입니다. 잘 나가는 동료와 친구를 보면 부럽고 샘이나거나 내가 초라하여 우울해했어요. 내가 하는 모든 수고가 보잘것없게 느껴졌고, 던져버리고 싶었고, 매력 없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나를 길들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나의 질투심과 욕심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회가 주는 실패의 그림자가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실패하기 싫도록 이 세상은 성공이 너무 찬란합니다. 나도 실패하기 싫었어요. 초라하기 싫었습니다. 내 심장의 끌림에 따라 사는 길은 초라한 길로 가는 지름길 같았습니다. 심장이 뛰는 일과 세상 찬란히 빛나는 일을 나는 늘 비교했던 것 같아요. 내 심장이 뛰는 일은 찰나인 것만 같고, 세상이 인정하는 찬란한 일은 영원불변의 진리 같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순간에는 늘 그랬어요. 거대하고 강력합니다. 우리 삶의 거대한 오존층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나는 행복합니다. 오늘 교수님이 내어주는 숙제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포기했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열어 주셨기에 언제나 만날 수 있다며 위안을 삼았었습니다. 그런데 늘 블로그와 유튜브를 서성거리다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어요.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고 행복합니다. 어제도 그제도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요. 


다른 더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를 하며 나는 혼자 웃고 웁니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또 그래요. 교수님의 질문에 성실한 답변은 아니라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 그대로 과제를 보내면 얼마나 부끄럽고 유치할지 얼마나 후회할지 짐작은 가지만, 다시 써지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보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꼬집어 보고 싶은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전 업무가 끝나 가는데 그새 교수님의 답글이 왔어요. 오늘 두번 눈가가 감동으로 촉촉해 지네요.

사명을 일깨워 주는 손글씨 깊이 품고 지금 이 자리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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