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 중이다. 치아바타나 치킨은 포장 없이 내가 챙겨간 용기에 담아 오고, 분리배출 방법이 헷갈릴 땐 적극적으로 검색해서 되도록 정확히 분리배출 하고 있다. 꽃병으로 쓸만한 병은 잘 씻고 소독해서 집에 있는 끈으로 마크라메 작업을 거쳐 새로운 화병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장 볼 때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 상품은 되도록 자제한다. 버리려고 택배 상자를 납작하게 정리했다가 마크라메 끈 정리함이 필요해서 정리함으로 사용하고, 스테인리스 드리퍼와 융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 두 잔 모두 부드러운 바디감으로 추출되는 장점이 있지만 미분이 조금 나오고 부지런하게 관리해주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단점인가? 몇 초, 몇 분 손이 더 가는 것이 과연 단점인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편리함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는 듯하다. 편리함의 극치에 닿은 우리의 일상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편리함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돈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편리하기 위해 편리함에 지배당한 삶이 당연한 삶이 되어버렸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삶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한다. 플라스틱을 버리기 전에 라벨을 떼어내고 두어 번 헹구는 작업은 사실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게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인지 아닌지 검색해 보는 것도 몇 분 걸리지 않는다. 장 볼 때 장바구니를 챙겨가는 것도, 스스로 용기를 챙겨가서 음식이나 빵을 담아 오는 것도(사실 이건 용기가 제법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리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생긴 몇 가지 변화들이 있다. 첫째, 나 자신을 조금씩 돌보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본다는 말처럼 어색한 말이 또 있을까? 나는 타인을 돌보는 일에도 그다지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돌본다는 것(돌보다-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이 추상적으로 느껴져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인가 의문이었다. 제로웨이스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그때마다 환경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또한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는 걸 어느 날 알았다. 그것은 내 육체에도 도움일뿐더러 내면을 돌보는 것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분리배출을 정확히 하려 노력한 의지에 박수, 어글리어스 마켓에서 주문한 야채들로 겉절이를 만들어 나에게 스스로 먹여 칭찬, 먹을 만큼만 만들어 요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은 멋에 취하는 것 등등. 지극히 단순한 제로웨이스트 실천 일상을 통해 나를 예쁘게 봐주는 작업들을 하면서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기는 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둘째,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감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했을 때 좋았던 것은 주변에 꽤 강력하게 설파하는 타입인데 문제는 추천에서 끝나야 하는데 내 얘기를 들은 상대방에게서 적용이 보이지 않으면 깊이 실망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 좋은 것을 왜 시도를 안 하는 것이야 하고 풀이 죽고 마음이 삐죽거리게 되는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내가 만족하는 정도의 실천은 만인에게 의무가 아니며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과 사정이 저마다 달라서 실천의 정도도 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제안과 격려는 하되 타인의 반응에 가있는 내 시선을 걷고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에 집중하기로 했다.
셋째, 자연을 더 깊게 누리게 되었다. 뾰죡한 마음이 허다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고 하늘과 풀잎과 꽃들을 보면 자연스레 감탄하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게 우리 인간이다. 원체 자연을 좋아하는 타입이지만 제로웨이스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부터는 마음에 잔잔히 주변 풍경을 머금게 되었다. 강렬하고 빠른 것도 마음에 큰 파동이 일고 때로 깊은 것이 되지만 때로는 잔잔하게 마음에 머금는 것이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하게 감동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단기간의 회복을 목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억지로 내어서 자연을 구경하는 시간들을 가졌다면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기점으로 자연은 일상이 되었다. 집 베란다 문을 열면 들리는 개구리 소리에 오래도록 귀를 내어두고, 비 오면 등장하는 느린 운무의 걸음을 찬찬히 따라가 보기도 하고, 빗방울에 쓸려 가는 작은 모래들과 먼지들, 떨어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수분 섭취 듬뿍하는 길거리의 나무들과 이파리들의 토독토독 흔들리는 그 움직임을 보는 것에 내 시간을 꽤 낸다. 제법 시원하게 그러나 잔잔하게 오래도록 바람 부는 아침이면 환기 잘 되도록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화분들 바람 듬뿍 맞을 상상 하며 출근하고, 할머니집 화분에 올라온 조그만 고양이 혓바닥만 하던 싹들은 어느 날 늠름하게 자라 넓은 잎이 되었고, 아빠가 심은 사과나무에 꽃이 떨어지고 이제는 호두만 한 크기의 열매가 맺혀서 사과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자연은 시간을 굳이 내어서 짧고 굵게 보고 돌아오지 않아도 눈 돌리면 모든 게 자연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자연은 저 길고 웅장하게 뻗어 있는 지리산만이 아니고, 반짝이는 윤슬이 가득 찬 섬진강만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삶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건 어떤 특정한 운동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