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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ul 29. 2023

저질체력의 뜀박질

꾸준함이 답이다.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말로 ’저질체력 소유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떡볶이 소스가 떡과 야채에 착! 흡수된 것처럼 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이다. 어느 정도인지 풀어보자면 막 서울로 상경했던 대학생 시절, 친구들이 쇼핑몰 전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각 층의 매장을 출입할 때 나는 출발 10분 만에 녹다운되어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게 루틴이었고 어떤 모임이든 꼭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아닌 이상 최대한 말을 아꼈다. 왜냐? 말하면 에너지가 증발되니까. 바닷가나 계곡으로 놀러 가면 그늘 밑에 자리 잡고 앉아 물 안에서 노는 이들을 보는 게 더 좋았다. 애초에 물놀이를 즐겨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놀면 금방 체력이 소모되곤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마음과는 다르게 힘이 빠르게 닳아버리기 때문에 끝날 즈음엔 술 한잔 걸친 사람 마냥 정신 잡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최고봉은 바로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 그중 특히 장거리 달리기는 출발도 전에 내게 패배감을 안겼고 늘 힘겹게 끝내곤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달리기는 내 운동 찜 리스트에 포함시킬 생각도 없었고, 아니 달리기와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현재 달리기가 취미가 된 건 나름 놀라운 변화이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본 것 아닐까? 삶의 범주에 없던 무언가가 어느새 일부가 되어 있는 변화 말이다.

 

 달리기는 지난 늦가을 즈음에 누군가의 기록을 보고 감히 호기롭게 덤벼 들었다가 호되게 내 체력에 당하고 며칠 못 가 접었었다. 그것도 뛰다가 죽을 거 같아서 걷고, 또 뛰다가 걷고를 반복해서 겨우겨우 끝냈던 기억. ’아차, 넌 장거리 못 뛰잖니. 그새 잊고 있었냐?‘ 생각하면서 걷기로 빠르게 노선을 변경해 1시간 반, 2시간씩 걷다가 그것도 차츰 흐려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월 중순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달리기 어플인 <런데이>를 소개해주었는데 어플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달리고 있다. 사용 첫날 재미를 잘 붙였는데 <런데이>는 달리기 스타터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효과를 톡톡히 본 터라 주변에 많이 퍼뜨렸다.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다양한 달리기 방법과 분 단위로 뛰고 걷기를 반복하는 인터벌 형식의 러닝도 가능하다. 뛰는 게 무리라고 생각되면 걷기 코스도 있다. 물론 이것 또한 방법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 제공된다. 50분간 뛰고 싶다면 50분 뛰기 코스를, 30분간 뛰고 싶다면 30분 달리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시간 상관없이 거리 단위로 뛰고 싶다면 그것 또한 가능하며 특정 달리기 코스 없이 자유롭게 뛰고 싶다면 이 또한 가능하다. 중간에 응원 메시지나 명언 제공을 선택하면 뛰는 도중 ‘대단합니다! 현재까지 1km를 달려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목표 지점에 거의 도달했습니다.’와 같은 응원과 5분 내외의 명언을 읊어준다. 이게 큰 도움이 되겠냐 싶겠지만 응원과 명언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느낄 수 있어 나의 경우 큰 도움이었다. 그렇게 런데이와 함께 밤의 송림공원을 뛰었다. 아침보다는 저녁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옛 철길 산책로의 야간 조명을 따라 뛰다가 컴컴한 가운데 드문드문 불빛이 비치는 송림공원으로 내려가 뛰었다. 저질 체력의 내 몸뚱이는 거친 숨을 몰아치며 머리가 산발이 되고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흡사 공룡 같은 자세로 필사적인 달리기를 펼쳤는데 그 몰골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어떻게든 오늘의 목표를 채워야만 한다는 집중력 하나로 달리기를 끝냈다. 기록은 (5분 뛰고 2분 걷기 방식으로) 평균 페이스 8분 35초, 3.18km를 27분 25초 동안 걷고 달렸다. 체력이 어찌나 엉망이었던지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그래도 뛰었다는 기특함과 흉한 몰골에도 잘 집중했다는 약간의 연민이 더해져 성취감 폭발이었다. 분명 몸 여기저기가 뭉치고 아플 테지만 계속 뛰고 싶다는 흥분이 나를 감쌌고 어릴 때와는 다르게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이번에야 말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거친 날씨나 몸이 아플 때 외에는 꾸준히 뛰어보자 하고 기분 좋은 목표를 세웠다. 이번에는 ’오늘 뛰어야 되는데…’가 아니라 몸이 달릴 태세를 갖추고 아무 생각하지 않고 문 밖을 나서서 단 10분이라도 뛰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달려보니 달리기에는 생각이 필요 없다. 오히려 생각이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하며 방해가 된다. 몇십 분, 몇 킬로 달리는 데에 필요한 생각이라곤 어떤 루트로 얼마큼 달릴까 하는 계획 외에는 필요 없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뛸까?’, ‘날씨가 너무 습하니까…’ 하고 생각을 시작하면 집과 내 몸은 혼연일체가 되어 꼼짝하지 않는다. 생각이 출발선에 선 순간 조금 무심해져야 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몸은 러닝복에, 발은 러닝화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 에어팟을 귀에 꽂고 뜀박질을 위해 준비해 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켜고 문 밖을 나서면 달리기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날의 컨디션을 살피며 페이스 조절 잘하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순조로운 달리기를 끝낼 수 있다. 달리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렇듯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습관을 정착하는 것이다.


 5분 뛰고 2분 걷기 형식으로 달린 거리 3.18km, 소요 시간 27분 25초, 평균 페이스 8분 35초의 첫 기록. 꾸준한 달리기로 7월 말 현재의 기록은 5km, 소요 시간 31분 54초, 평균 페이스 6분 22초. 물론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제는 4~5km를 달리는 초보 러너의 중간 지점에 도달했다. 달리기 기록표에 가득 찍혀 있는 출석 도장을 보면 흐뭇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꾸준히 하기 전엔 내가 매일 5km를 달릴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달리기는 꾸준함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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