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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순례길 에필로그
걷는 인생은 아름다워

7번 국도 순례길 5-Day5 완주+칠포항~청진 1리 작은 교회 5km

by 일곱째별


걷는 인생은 아름다워


2024년 1월 27일 토요일 도보순례 다섯째 날 16.5+5km


나는 날아오르듯이 걸어 올라갔다. 마치 팽팽한 고무줄에서 쏘아 올린 조약돌처럼 튕겨 나가듯 걸었다.

7번 국도 도보순례의 내 최종 목적지는 칠포해수욕장도 칠포항도 아니었다.


오후 1:45 일단 해오름 전망대를 향해 올라갔다. 차도 옆길을 따라가는데 어떤 할아버지 뒤에 허리 고부라진 할머니가 할아버지 옷자락을 쥐고 따라가셨다. 평생 할아버지만 보고 살아오셨을 인생이 한눈에 보인다.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 부럽다고 해서 앞으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코너 돌아 사라질 때까지 뒤돌아보다가 다시 걸었다. 해안으로 가는 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씩씩하게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그런데 잠시 후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펑’ 소리가 나며 1톤 트럭이 내 바로 뒤 갓길에 급정거했다. 타이어가 펑크 난 것이었다. 그 차가 속도를 못 이기고 돌진했다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살아있음이 감사했다.

안도할 틈도 없이 전진했다. 도로 옆으로 난 데크 길로 올라섰다.


1:53 잠시 후 해오름 전망대가 보였다.


‘해오름 전망대를 지나는데 지난여름 자전거 도로에서 야영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비록 발목과 무릎이 시큰거리고 발톱이 빠져도 걸을 때 나는 행복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다 가기에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아닌가.’


2020년 11월 20일 도보 순례 글이다. 그때 나는 그곳에서 사진 찍고 있는 젊은이 한 쌍이 부러워 그곳을 쳐다만 보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없는 전망대로 내려갔다. 맨 끝 구멍이 숭숭 뚫린 곳까진 못 갔지만, 나무 데크 끝까지 가서 정면 바다와 좌우 바닷가를 보았다. 알콩달콩 사진 찍을 사람이 없어도 혼자 거뜬히 상쾌했다.


‘해오름은 포항-울산 고속도로 완전 개통을 계기로 포항·울산·경주가 함께하는 동맹의 이름이라고 한다. …… 세 도시 모두 …… <산업의 해오름> 지역이라는 점과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의 해오름이 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칠포리는 수군 만호진이 있던 곳이며, 고종 8년(1870) 동래로 옮겨가기 이전까지 군사 요새로서, 7개 포대가 있는 성이라 하여 7포성이라 불렀다 한다.’

그래서 칠포였구나.


산업과 경제가 아닌 친환경 탈핵 해오름 전망대


거기서부터는 차도 가까이지만 산속 오솔길이 나있었다. 아주 예쁘고 정감 있는 길이었다.


오후 2:10 오도 1리에 도착하니 예전에 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전에는 방금 온 해안 길이 막혀있는 줄 알고 펜션 사이로 올라가 찻길로 걸었었다. 거기서 화살표를 따라 해안길로 갔는데 철창으로 막혀있었다. 다시 돌아 나와 찻길로 갔다.


거침없이 걸어가는 내 몸은 세컨드 윈드(second wind)를 맞아 탄력이 있었다. 도보 순례 직후에 지리산에 갔어야 했다. 가만히 일상생활하다가 준비 운동도 없이 그 가파른 산에 올랐으니 그렇게 난행고행이었지. 몸이 이렇게 활동성에 적응됐을 때 갔다면, 그리고 짐을 지금처럼 아주 가볍게 해서 올랐다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2:42 쉬지 않고 오도 2리를 지났다. 내가 찾는 이름이 나타났다. 그런데 크기가 엄청 커져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저 교회가 저렇게 커졌어요?”

“원래 컸었는데.”

“전엔 작았는데요.”

“95년에 지었는데?”


순간 시골 교회에도 재건축 바람이 불었나 성급하게 실망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름이 맞는 것 같은데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지?’


3:10 찻길로 나가 청진 2리 정류장에 앉았다. 이 근처 어디였다. 인터넷 지도를 켜서 비슷한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있었다. 1km만 더 가면 있었다. 찻길가로 달렸다.


3:20 청진 1리. 마을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 있었다. 그때 그 교회가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이름은 그새 바뀌었지만.


‘그런데 발길이 닿는 모든 길에는 뜻이 있는 법, 조급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축물이 하나 나타났다. 아주 작고 단아하고 아름다운 교회였다. 운주사 칠성바위의 축소판 같은 돌다리를 밟고 미닫이문을 여니 네 길이가 같은 십자가가 정면 벽에 걸려 있었다. 채 열 사람이나 앉을까 싶은 의자들 양 옆으로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벽과 그 위 창이 있었다. 자연스레 기도를 했다. 언제 어디서나 내 기도는 단 하나였다.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헌금함이 있었다. 나는 늘 감동을 주는 종교시설에선 아끼지 않고 헌금을 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세상에나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뿐. 타 지역에 갈 땐 신용카드사용이 안 되는 곳이 많으니 늘 가격대별로 지폐를 준비해 다니던 나였다. 챙겨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 혼자 덜렁 와 있으면서 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2020년 11월 20일에 왔던 그 교회. 반대 방향에서 걸어왔지만, 마침내 찾아온 그 교회.

다시 돌다리를 밟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두 개의 문이 지난번처럼 다 열렸다.


‘그래, 이렇게 문이 열려있어서 아무나 기도할 수 있게 하는 게 교회지.’


입구 왼쪽엔 작은 키보드가 있는데 그 위에 찬송가가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아는 찬송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육각형 실내에 양쪽으로 네 개씩 있는 작은 나무 의자 사이로 나가 강대상 앞에 배낭과 스틱과 장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른쪽 둘째 줄 의자에 앉아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구하지도 않고 오직 감사만 나왔다. 천장을 보고도 감사, 벽을 보고도 감사했다. 그리고 지갑을 꺼냈다. 성경 속 ‘과부의 두 렙돈’처럼 가지고 있던 현금 전부를 드렸던 4년 전과 다르게 빳빳한 지폐를 꺼내 감사 헌금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연필로 썼다.


‘7번 국도 해파랑길 북파랑길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완주

지난번의 1000배 원

일곱째별’


영일대 해수욕장~칠포항 16.5km(완주)+칠포항~청진 1리 작은 교회 5km=21.5km

5km는 버스로 건넌 포항제철소 구간 거리와 같다. 그러므로 거리상 나는 경주~포항 구간-해파랑 12, 13, 14, 15, 16, 17, 18. 총 일곱 구간 101.1km를 닷새에 완주했다. 사실 정말 7번 국도 구간을 걷는다면 호미 반도는 걷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2020년 2월에 시작한 나의 7번 국도 도보 순례는 4년 만에 끝났다.


7번 국도 도보 순례 완주 감사



작년 3월 어느 날 오후, 거의 공황에 가깝게 깊은 절망에 빠진 나는 서울의 모 여자대학교 앞을 지나다가 쇼윈도에 진열된 진줏빛 공단 드레스를 보고 끌리듯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내게 입을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출판기념회가 있을 예정이지만, 장르가 르포라 이런 옷을 입을 분위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탈의실에서 그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좀 조이기도 했지만 내가 살 옷이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에 초록색 루즈핏 데님 바지와 아이보리 색 코튼 블라우스를 샀다. 그런데 주인이 계속 내게 그 드레스를 권했다. 드레스를 사면 입을 일이 생길 거라고. 그러면서 진주 목걸이를 해야 어울린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처절한 혼자였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실은 그 드레스를 입고 이 교회에 다시 오고 싶었다.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진줏빛 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 교회에 다시 오고 싶었다. 드레스를 샀을 때보다 4~5kg 빠졌으니 지금쯤 그 드레스를 입으면 넉넉하게 잘 맞으리라.


만약 예전처럼 차를 가지고 도보 순례했다면 혼자라도 차에 그 드레스를 실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속옷과 양말만 빨았지 매일 입었던 옷을 또 입으면서 경주에서부터 포항까지 닷새를 걸어오느라 드레스 따윈 챙길 여력이 없었다.


나는 드레스를 올려놓으려던 의자 위에 노란색 ‘이주만이 살길이다’ 조끼를 올려놓았다.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이주만이 살길이다



2021년 6월, 내가 최초로 혼자 14일 동안 해남에서 하동 거쳐 구례까지 18번 국도 240km 도보 순례를 하고 돌아왔을 때 탈핵 벗들이 남원에 모였다. 그때 매주 월요일 8~9시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상여시위와 연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울산에 부탁해서 다음 날 조끼를 받았을 때는 앞에 ‘월성핵발전소 2, 3, 4호기 조기폐쇄!’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의 이주를 위해서 순례하는데 왜 ‘월성핵발전소 2, 3, 4호기 조기폐쇄!’가 구호가 되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탈핵공동행동에서는 2, 3, 4호기가 조기폐쇄 되어야 나아리 주민도 이주할 수 있다고 했다. 여하튼 그 조끼를 입고 다음 해인 2022년 5월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1년 동안 빠지지 않고 전국 어디에 있든지 아침 8~9시에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탈핵’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나아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라는 작은 공동체는 늘 뒷전에 밀렸다. 이제야 나는 그들을 위한 ‘이주만이 살길이다’ 조끼를 입고 걸었다. 마침내 내면의 소리 Inner Voice에 따라.

조끼는 바뀌었어도 내 배낭의 몸자보는 여전히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이다. Cause 대의명분을 지키며.


그 몸자보를 처음 받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2019년 여름 해산했다.


2020년 2월, 혼자라도 걷겠다고 맨 처음 7번 국도에 나섰을 때 도반이 생겼다. 그때 우리는 배낭을 바꾸어 멨었다. 내 큰 배낭은 그가. 그 몫의 작은 배낭은 내가. 그렇게 울진부터 삼척까지 나흘을 걸었다.


경북 울진군 나곡리 도화동산


2020년 7월, 다시 큰 배낭을 각자 둘이 메고 삼척부터 걸을 때 순긋해변으로 온 벗들이 고생 그만하라며 삼척에 세워둔 차를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때부터 걸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짐을 둔 차를 가지고 가거나, 차를 먼저 갖다 놓고 버스 타고 와서 걷거나 했다. 그렇게 8일간 삼척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걸었다.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


2020년 11월, 포항에 강의 차 왔다가 월포에서 각각 화진과 칠포까지 혼자 걸을 때는 오롯이 내 가방을 내가 멨다.


포항 화진해수욕장


2021년 2~3월, 울진 망향정에서 벗들과 함께 시작한 도보 순례 때는 차가 있었고 내 가벼운 배낭마저도 닷새 내내 도반이 멨다. 그렇게 닷새간 화진해수욕장까지 걸었다.

나는 도반 덕분에 늘 가볍게 다녔다. 둘이 있을 때는 길을 찾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숙소를 구하는 것도 모두 재미있었다.


다시 화진해수욕장 ( 저 배낭은 낡고 찢어져서 버렸다.)


2021년 6월부터 나는 또 다시 혼자 해남, 강진, 장흥, 보성, 벌교, 순천, 광양, 하동, 악양, 화개, 구례, 곡성 다시 해남에서 진도까지 18번 국도를 완주했고, 해남을 샅샅이 도보순례했다.

2022년 1월 하동부터 사천, 진주, 함안, 마산, 진해, 가덕도, 부산 오륙도부터 고리핵발전소까지 걸었다.


부산 오륙도에서 광안리 가는 길



2023년 10월 지리산 화대종주 때 내가 말했다.

“7번 국도 도보 순례 완주 때도 차 가지고 가지 말고 이렇게 배낭만 메고 가면 좋겠다.”

“혼자 가세요~”

도반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서운해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나 배낭 무게에 짓눌려 조난 직전까지 갔었고, '내 사전에 낙오는 없다'는 도반의 말을 지키려 끝끝내 종주에 성공했지만, 지리산에서 하려고 준비했던 말을 하지 못한 채 내려왔다.


언제까지고 함께 걷고 싶던 도반은 지금 곁에 없다.


벗들도 모두 각자의 일로 바쁘다.


그런데 이번 7번 국도 도보 순례 첫날에 알았다.

나는 이제 외롭지 않음을. 혼자가 정말 좋음을.


2024년 1월, 나는 혼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혼자 일어섰다. 이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성취한 개인은 창조성이 풍부한 삶을 추구할 수 있고, 자유롭고 고요하게 자신의 삶을 사색할 수 있으며,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그는 타자와 함께 있을 수 있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길목인 2022년 12월 여는 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은경) 중


나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성취했다. 그러므로 나는 창조성이 풍부한 삶을 추구할 수 있고, 자유롭고 고요하게 자신의 삶을 사색할 수 있으며,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또한 나는 타자와 함께 있을 수 있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교회 문 앞에는 DER MENSCH IST DER WEG DER KIRCHE라고 쓰인 작은 금속 문양이 붙어 있었다.

‘인간은 교회의 길이다.’? 그럼 교회의 길이 길을 걷는 거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라 없느니라’의 ‘내가 곧 길이요’겠지.



교회에서 나온 나는 숨이 턱에 차도록 전진하던 도보 순례 길에 반갑게 나타나 주던 카페 이름 ‘그리고 청진’에 들어가 6500원짜리 오미자 주스를 시켰다. 이정표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주스를 텀블러에 담아 나와 맞은편 정류장에 가서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완주했다고 몸에 안 맞는 찬 음료도 마셔버린다.


오후 3:40 버스가 왔다. 그 버스를 타고 10분 만에 한 시간 반 동안 걸어온 오도리와 사방기념공원과 칠포 1리와 칠포해수욕장을 지났다.


4:22 흥해환승센터에 내렸다. 포항역 가는 5000번이 오기까지는 22분이 남아서 건너편 영일민속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600년 된 회화나무가 있었다.

5000번을 타고 5시쯤 포항역에 도착했다.


5:15 역내 푸드코트에서 10,900원짜리 잔치국수와 김밥 세트를 시켜서 먹었다. 아무리 허름한 음식을 대해도 은수저로 먹는 이상 나는 우아하다. 그게 짐을 1g이라도 줄여야 하는 험난한 도보 순례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나만의 방식이다.

오후 6시 기차에 올랐다. 부서진 스틱 끝이 보인다. 자신은 부서지면서 나를 지탱해 준 파란 스틱.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상이다.


최선을 다해 산화한 그대 고마워요. 이제 안녕~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7번 국도

2019년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고리핵발전소에서 월성핵발전소까지 75.2km


나만의 7번 국도 탈핵도보순례

2020년 2월 12일부터 15일까지 울진에서 삼척까지 79.6km,

7월 1일부터 8일까지 삼척에서 고성까지 187.5km,

11월 13일 월포에서 화진까지 10.5km와 20일 월포에서 칠포까지 8km,

2021년 2월 28일부터 3월 4일 울진에서 화진까지 102.6km,

2022년 1월 9일부터 10일까지 부산 오륙도에서 고리 핵발전소까지 54km

2024년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경주 문무대왕릉부터 칠포항까지 96.1km+5km=101.1km

이렇게 부산에서 고성까지 618.5km,

그중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2020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대한민국 동해안 543.3km를 도보 순례했다.

(남도순례길 도보 순례는 따로 있다.)


첫 도보순례 포함 세 번이나 함께 도합 370여km를 완주해 준 도반이 있었기에 순례길이 든든했고 길 따라 바다 따라 웃음꽃이 피었다.

군데군데 함께해 준 벗들이 있었기에 순례길이 따뜻했다.


감사하다. 그저 감사하다.

걷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참 아름답다.


주황색 북극여우가 내 머리 위에 있어 외롭지 않았던 마지막 7번 국도 도보 순례길 photo by 영상 at 호미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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