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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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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19. 2024

thanks for the intellectus

통찰과 <말하는 눈>에 감사합니다


두 달째 매주 일요일마다 성당에 갑니다.

주보를 받아오면 맨 앞 장에 성인 약전이 나옵니다.

26세, 45세, 36세, 53세, 56세, 53세.......

순교자들이 순교한 나이입니다.


그들이 스러진 나이에 비하면 저는 지금 죽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나이입니다.

진리를 알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면 인생의 도를 아는 어느 정점에 올라야겠지요.

물론 1800년대는 환갑을 넘기면 장수했다고 할 시대였지만요.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대신 성령이 내려오셨음을 축하한다는 의미겠죠.

봉헌 시간에 헌금을 한 후 옆에 있는 바구니에서 7가지 은사가 적힌 종이 중 한 가지를 뽑았습니다.  


내심 지혜나 사랑 같은 걸 기대했는데 통찰이 나왔습니다.

성령7은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만 달달 외웠던 개신교에선 못 배운 내용입니다.


가톨릭 신문에 찾아보니 성령칠은의 종류는 인간 지성과 관련 있는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이해) ▲의견 ▲지식, 그리고 인간 의지와 관계 깊은 ▲용기(굳셈) ▲효경 ▲경외심(두려워함)이라고 합니다.


통찰

intellectus

하느님의 진리를 잘 알아듣고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은혜


신부님도 두 번이나 뽑으셨다는 '통찰'.

어쩐지 저와 잘 어울리는 듯, 어쩌면 지금 나이의 제게 꼭 필요한 은사인 듯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원래 오늘은 미사 후 향적산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세차 후 타이어 바람구멍 캡이 빠진 걸 보고는 얌전히 집에 있습니다.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 게구나 하면서요.


토스트를 해 먹고 니트 손빨래를 조금 하고는,

한 달 전부터 읽던 책을 마저 읽었습니다.

이 책은 지난번 향적산에도 가져가 읽던 책입니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조금씩 읽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다른 책과 함께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빠르게 읽어버리고 말 책이 아니라 꼭꼭 씹듯 야금야금 읽었습니다.


비움실천을 한 이후로 책을 언제 누구에게 주거나 팔지 몰라 책에 포스트잇 외에는 표시를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는 그만 표시를 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예전에 시집에 하던 습관처럼 끄트머리를 조금 접어두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급기야 연필로 밑줄을 긋고 말았습니다.


망각의 성립은 언제나 공조에서 비롯된다.

   이럴 때, 역사는 재빠르게 권력의 의지를 읽어낸다.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예술은 어중간한 중립을 창조한다. 보편을 떠든다. 과거 대신 미래를 보라고 선언한다. 순수를 가장한다.

p. 216


나를 지칭한 것도 아닌데 '예술은 어중간한 중립을 창조한다. 순수를 가장한다.'에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작가가 싫어했다가 사랑하게 된 故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르포가 문학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예술가로 쳐주지도 않겠지만, 스스로 지금 어중간한 중립에 서서 순수를 가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해 봅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61쪽에는 빨간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122, 127, 132, 143쪽은 귀퉁이가 접혀 있고

233쪽 맨 윗 줄에는 밑줄을 그었군요.

'정당한 분노를 위해 사용해도 좋은 사진의 경계는 예나 지금이나 흐릿하다. 하물며 움직인다.'


아끼는 곶감을 빼먹듯 책을 다 읽고 나자 누군가 제 책을 읽고는 불편했다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불편했다고,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해서......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미안해서 불편했습니다.

한국 사진가들 명단도 모르는 제가 감히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다큐멘터리스트라고 생각하는

노순택(의) 글·사진 말하는 눈, 한밤의빛, 2023


이 책이 제 '통찰'의 시작이 되겠습니다.


+ 이 책을 선물해 준 수미차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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