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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28. 2024

동거 스무나흗날

콩이 쾌유 일지-콩이 덕분에 알게 된 것


심야에 콩이가 소리를 냈다. 밖에 경찰차 무전소리 같은 게 들렸다. 1층 밖에서 누군가 왔다 갔다 하고 실랑이하는 소리도 들렸다. 무서워서 밖에 나가보진 못했다. 간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또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차 떠나는 소리가 났다.

긴바지 긴팔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SUV 한 대가 아래에서 출발해 산 아래 위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 동네는 인적도 드문데 무슨 일일까?


06:06 일어났다가 화장실만 다녀오고 다시 잠을 청했다.

08:08 일어나 평소와 다른 유튜브 영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나갔다.

08:30 콩이를 안고 밖에 나가보았다. 집 마당은 그대로다. 지난밤 무슨 일이었을까?

벌써 햇빛이 따갑다. 그늘 찾아 옆집 쪽으로 갔더니 옥수수는 내 키를 넘었다. 산책 거리가 너무 짧아 마을 느티나무 쪽으로 갔다. 100년 된 느티나무 그늘이 농로의 유일한 그늘이었다. 느티나무 아래로 가보았다. 처음 보는 비둘기 한 쌍이 있었다. 여태 한 번도 눈에 띈 적이 없는데 그 새들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모형이었으니까. 정자 뒤쪽으로 가보았더니 잡초 더미에 운동기구도 있었다. 시나 면에서 설치했을 텐데 관리하지 않아 아무도 쓰지 않는 기구들이었다.



다시 돌아오는데 개천 물이 맑았다. 하지만 누군가 흘려보낸 거품이 조금씩 떠 있었다.

향적산 위쪽으론 푸른 하늘에 쪼끄만 부채 모양의 구름들이 깃털처럼 몽싯몽싯 떠 있었다.

콩이는 앞집 주황 장미 근처에 대변을 두 번이나 보았다. 앞집에서 싫어할 만하다.


08:55 집으로 돌아오니 누런 등짝에 얼굴 아래와 앞다리가 하얀 늙은 고양이가 잔디에 엎드려 있다. 늘 오던 하얀 고양이는 새끼를 낳았는지 어느 아침 우리 정원에서 옆집 쪽으로 하얀 아기 고양이가 가는 걸 본 적 있다. 바깥에 콩이도 없고 그래서 사료를 주지 않으니 하얀 고양이는 오지 않는다. 대신 친하지 않은 누런 고양이가 제 집처럼 천연덕스럽게 엎드려 있다. 남의 집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개를 봤으면 꿈쩍이라도 해야 하는데  겁도 내지 않고 피하지도 않는 게 사뭇 뻔뻔스럽다. 콩이가 없으니 아주 고양이 판이다.


650m 걷고 돌아와 바가지에 물을 받아 콩이에게 마시게 해 주고 털을 빗겨주었다. 그리고 안고 올라와 다시 상처에 소독약을 뿌려주고 사료 100g을 그릇에 덜어 주었다. 먹지 않고 그릇 앞에 엎드린다. 손바닥에 올려놓아 다 먹였다.


근처 지구대에 전화를 했다. 새벽 한 시쯤 출동했는지 물었더니 아니란다.

시청 시민 안전과에 전화했다. 이 길 삼거리에 CCTV 설치를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올해는 예산 집행이 다 끝나서 만약 설치한다 해도 내년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동물보호과에 전화해서 포획전문가 연락처를 받았다. 전문가는 그 시커먼 개를 알고 계셨다.  약바르다고. 벌써 여러 번 신고가 들어왔었다고. 그런데 그 개와 함께 다니던 허연 개는 포획해 가셨다고 했다. 다리를 다친 개였다고 했다. 콩이가 물린 그 장소에 있었단다. 

그리곤 소방대원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 개는 마취총에 맞아도 10분 간 돌아다니는데 10분이면 몇 km 가니 어떻게 잡느냐고. 보통 마취총과 트랩을 사용해서 유기견이나 들개를 포획한다고 한다.

그런데 동물보호소에서 12일 후까지 입양 가지 못하면 안락사시킨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몇 달 몇 년도 아니고 12일이라니? 만약 포획한 개 중 심장사상충이 있으면 바로 안락사시킨다고 했다. 치료비가 100만 원이 넘고 모기를 통해 다른 개한테 옮기기 때문이란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는 12일이 넘어도 바로 안락사시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허연 개는 20일 됐는데 아직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동네는 입양이 50% 넘어서 잘 가는 편이라고 했다.


동물보호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동물병원 내에 있다고 한다. 동물보호소를 추진하고 있는데 예정지 300m 근방에서 반대를 해서 설치를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동물보호소라고 하면 혐오시설이라고 건축을 반대하는데 실제로 정화시설도 있고 방음시설도 있어서 냄새도 나지 않고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한다. 내가 서명이나 뭐라도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자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시겠다고 한다.


전국의 유기견 보호시스템을 통해 입양할 수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이곳이 있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https://www.animal.go.kr/front/index.do


입양 대상 동물을 검색해 보았더니 그 허연 개가 등록돼 있다. 등록된 개들은 대부분 '믹스견'과 '믹스묘'다.  사람들이 값나가는 고급종은 버리지 않는 걸까? 그런데 사진을 대충 찍어 입양되기 쉽지가 않겠다. 사진을 좀 예쁘게 찍어두면 입양이 훨씬 쉽지 않을까?

콩이를 통해 오늘은 동물보호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만큼 살아도 모르는 게 참 많다. 그리고 매일 배우는 것도 많다. 콩이 덕분에 인생의 지경이 점점 넓어지는구나.



눈을 뜨자마자 날이 매우 화창해서 '오늘은 빨래하는 날' 이렇게 속으로 외쳤다.

먼저 욕조에 담긴 씻고 남은 물로 계단 청소도 하면서 차양 거미줄도 제거했다. 그리곤 종일 매트 시트와 베개커버와 수건과 잠옷 등을 빨고 또 빨았다.

"빨래해도 돼요?"

이렇게 물어보지 않고 마음껏 빨래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그런데 세탁기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다용도실 짐을 다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세탁기 뒤 배수구 호스 연결 부분을 제대로 맞춰 끼운 다음 탈수되는 물로 청소를 했다. 몇 년은 묵어 보이는 하수구망까지 칫솔로 광택 나게 닦았다. 평소 가끔 걸레로만 닦았었는데 물청소는 처음이다. 개운하니 아주 좋다. 다용도실 짐을 다 들어내고 보니 은근히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이 늘었다. 이번 참에 짐을 좀 정리하고 줄여야겠다.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학교 일 마침. 이제 1학기 끝.

에너지를 많이 썼더니 출출해서 샌드위치 만들어서 카페라테랑 점심 식사.


큰 빨래만 세탁기 절약코스로 돌리고, 나머지는 욕조에 세제를 풀고 담가두었다가 손빨래. 물을 받아서 쓰니 훨씬 절약할 수 있다. 대신 손가락 마디 관절이 얼얼~. 손목도 아파서 보호대로 조여야 했다.


18:45 콩이 안고 나가 산책 겸 소변 그리고 대변 또 한 번. 그늘 찾아 빙빙 도느라 1,260m.

맞은편 집 여주인이 계시길래 어젯밤 늦게 무슨 소리였냐고 여쭤보았다.


"수도관 공사. 혼자서 놀랬겠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물소리가 들렸었구나. 수도관 청소 때문에 단수해 놓고 그 정도 추리도 못 하다니... 그래서 18시간 동안 불안해하다니.......


19:12 마당에서 물 마시게 하고 빗질해 주고 안고 올라와 소독하고  사료 100g 주니 이번엔 혼자 다 먹는다.


아침에 전화했던 지구대에 다시 전화해서 상황 설명하고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고 알려 줌. 어쩌다 시골에 와서 점점 경찰과 친해지는구나.


빨래를 다 하고 바닥 전체 물걸레질을 싹 하고 나니 손목은 아프지만 발바닥이 뽀송뽀송 쾌적하다.


낮에 식빵 두 쪽 샌드위치가 더부룩해 저녁식사는 건너뛰려고 했는데 어젠가 그젠가 한 밥이 쉬려고 하네. 하는 수 없이 역시 상할 지도 모르는 마지막 삼겹살 한 줄 구워서 저녁 먹음. 두세 끼 분의 밥을 압력밥솥에  해서 먹고 남으면 계속 찬밥을 먹는데, 이제 밥이 남으면 전기밥통을 써야 할 계절이 왔다. 한여름과 한겨울에만 쓰는 전기밥통.

내가 밥 먹는 동안 콩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서 쳐다보지만 먹고 싶다고 짖지도 달라고 낑낑대지도 않는다. 정말 교양 있고 조용한 개다.  

라디오의 교향곡이 시끄럽다. 이제 콩이에게도 내게도 고요한 시간을 선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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