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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Feb 16. 2023

남도 순례길 11-남원에서 봄

귀정사~승련사, 요천100리 숲길 30km


# 지난 이야기 

2022년 1월, 열흘간 하동에서 부산 고리핵발전소까지 200여 km를 걸었다.

2월, 전라북도 정읍시 동학농민혁명 샘솟길 등 60여 km를 걸었다. 

3월,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로 왔다.     

    


☆ 홀로 정상 등정-만행산 천황봉 1

2022년 3월 2일 수 만행산 천황봉(909.6m) 왕복 5km     


3월 첫날,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에 왔다. 

이곳은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일해 온 이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힘써 온 이들, 국가폭력과 각종 사회폭력의 피해자들, 더 많은 자유와 평등, 평화,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사회 각 부문에서 일해 온 이들을 위해 2013년에 개원한 연대 쉼터이다. 


이튿날 점심밥을 먹고 산책 삼아 나섰다. 

등산화를 신었을 뿐 긴 니트 자락에 헝겊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별 준비 없이 출발했다. 

아름드리 서어나무 세 그루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두 시간쯤 오르니 만행산 정상이 나타났다. 볕이 따뜻했고 사방으로 산이 펼쳐졌다. 가끔 산에 오르지만 어림없는 정복욕 따위는 없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고 우월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내려가야 할 터이니 그저 중간 지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뭐든 그렇다.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즐겁지, 무언가를 이루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늘 새로운 도전과 그걸 이루면서 겪는 변화가 신이 나지, 다 이룬다고 그게 업적이 되나? 그 자리는 두고 나는 내 길을 찾아 또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소유는 없다. 천년만년 살지도 못하는 세상 함께 나누며 잘 살다 가야 한다. 

하산길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다음 날 다른 방 입주자에게 들어보니, 내 뒤로 멧돼지 떼가 지나가서 그분은 되돌아 내려가셨다고 했다. 하도 겁이 없으니 산도 나를 보호해 주시나 보다.      


만행산 천황봉

 


☆ 귀정사에 온 이유   

2022년 3월 3일 목 귀정사~승련사 5km     


다음 날 아침 8시. ‘공양깐’ 앞으로 갔다. 

쉼터 입주자들이 함께 등산로를 ‘개척’한다기에 나서보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행동이라니 평소 나답지 않았지만, 새로운 길을 간다기에 마음이 동했다. 

계곡 아래는 얼음이 얼었고 산등성이는 초봄이라 겨우 갈 수 있는 숲길이었다. 

귀정사에 상주하시는 지행 님은 초반에 팔짱 끼고 산길을 오르는 모습에서 고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놀라운 건 큰 배낭에 톱과 조선낫을 챙겨 오셔서, 만행산 능선을 타면서 길이 좁아지자 관목을 베면서 길을 내셨다. 시에서 벌목 용역비를 쳐주지도 않고, 벤 나무를 가져다 땔감으로 쓰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한 길을 내어주는 배려심이야말로 좀 더 나은 사람답게 사는 미덕이 아닐까. 한데 나는 그가 아니라 그가 쓰는 무쇠 조선낫을 보자마자 반했다. 내가 호기심에 반색하자 그는 대장간 이름과 가격을 알려주는 친절을 발휘했다.      


길을 걷다가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 옆방 먼방지기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스무 살 젊은 청년이다. 작년 하반기에 내가 살던 해남에서 태어나, 완도에서 자라, 포항에 있는 공업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기업 등에서 작년까지 쉬지 일하던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작년인 2021년 8월까지는 그랬다. 기능올림픽에 출전하던 고등학교 때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던 그가 요즘 처음으로 쉬어본다고 했다. 

이유는 작년 8월에 코로나 19 백신 화이자 접종 후 폐암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180cm 가까운 신장에 체중 80kg이 넘고 10개월 전에 받았던 종합검진에서도 건강했는데, 백신 접종 이후 가슴 통증이 있어 곧장 병원에 갔더니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력도 없다. 병원에서는 급성 심근염과 심낭염이 아니므로 백신과 폐암의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먼방지기.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내가 왜 귀정사에 왔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1월 도보 순례를 마치고 2월에 귀정사에 왔다가 3월에 제주로 가서 4.3 항쟁 루트를 개척하며 답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귀정사 쉼터에 방이 없어서 갑자기 정읍으로 갔고, 2월을 만영재에서 지내고 3월에 귀정사로 왔다. 그런데 먼방지기는 지난달에 다른 방에 있다가 내가 오기 하루 전에 내 옆 방으로 왔다고 한다. 우리는 만날 인연이었다. 

첫인상이 순하고 맑고 언행도 조심성 있어 옆방지기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에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니, 의협심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봄 새싹처럼 솟아올랐다.      


녹색평론을 21년 구독한 나도 백신 접종에 반대 입장이었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1년 만에 개발해서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백신을 맞아야 하는데, 부작용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내 주변 사람 대부분은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로부터 온전히 지켜진다는 안심이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보다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싫어도 맞았다. 

나 역시 공공의료연대 시위를 보고는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신청 마지막 날 접수해서 접종했다. 그나마 좀 더 공신력 있는 화이자를 맞고 싶었는데 연령대 제한으로 모더나 밖에 안 된다고 해서, 1차를 모더나로 맞았다. 그런데 2차 접종 시기에 모더나가 부작용이 많아 철수했으니 남은 분량으로 특정한 날에만 맞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 다 접종하고는 해남의 집필실에서 근육통, 발열, 오한, 두통으로 혼자 끙끙 앓았다. 오랜 세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몸이 심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유전자 백신으로 같은 종류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백신과 암 사이에 아무 상관성이 없다고 한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신종 백신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수치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뿐일 지도 모른다.     

 

여하튼 시기상 백신을 맞고 암을 발견한 먼방지기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전이 됐다면서도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에게 실망해 양방치료를 중단했다. 그리고 체질에 맞는 한약과 섭식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다. 자연치유를 위해 귀정사에 왔다.      


먼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으로 시선이 간다.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착한 젊은이도 있나 싶다.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성실하고 착실하게 학교와 직장에서 공부하고 일했으나 중대 질병에 걸린 후에야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 강의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내년에는 수능도 치고 싶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등록금만 있었어도 유명 공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해야 했었고, 군대에서 전역하는 날 대기업 입사시험을 쳐서 합격한 그는 야간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사내에서도 지원은커녕 불이익과 차별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미활동도 하고, 운동도 해서 빨래판 같은 복근을 만들었던 그였다. 발병 이후 13kg 감량했다는데 겉으로 보이는 병색이 없어 나는 그가 환자임을 종종 잊는다. 그건 그의 밝은 성격 덕분이기도 하다. 멀쩡한 몸으로도 종종 우울한 나보다 그의 정신상태가 더 건강해 보인다.      


맑고 밝은 먼방지기의 모습에서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과 구의역 故 김 군이 겹쳐진다. 가정과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갓 취업한 아직 어린 젊은이들이 자본 위주의 사회안전망 부재로 속절없이 죽는 사회. 그리고 병에라도 걸려야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 땅의 가난한 젊은이들. 그런 취업의 문마저 좀체 열리지 않는 2030. 그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교과서 읊듯 말할 수 있는지.      

설상가상 먼방지기는 2차 백신을 접종하고도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자가 격리해야만 했다. 세 시간 걸려 보건소에서 PCR 검사받은 후, 나흘간 체온이 39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저 질환자이면서도 50세(최근엔 60세) 미만이라 집중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앞으로 더욱 새롭고 다양하게 위험한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World Health Organization)와 K-방역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귀정사~승련사

 


☆ 천황봉에서 본 천왕봉-만행산 천황봉 2

2022년 3월 5일 토 천황봉(909.6m) 왕복 5km     


경칩을 맞아 바람이 세고 하늘은 청명했다. 

점심 식사 후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 것 같다는 귀정사 정분(방이름)지기의 말에 따라 먼방지기와 함께 만행산 천황봉에 두 번째로 올랐다.      


올라가는 내내 정분지기로부터 두 인생사를 들었다. 사랑 이야기였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승부에도 연연하지 않고 말로만 부럽다고 했다. 사랑이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 내 인생에 사랑은 없는 셈 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생활형 인간이 아니듯 다른 차원을 꿈꾸는 건 이승에선 어렵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나처럼 높고 먼 구름을 밟는 듯한 인간형을 어디서 만나겠으며,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해도 같이 걸어 다니면 생활은 누가 하고, 실컷 날아다니다가 가끔 품에 안기는 사람을 누가 기다려주겠는가. 그런 터무니없는 바람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는 게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황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향했을 때 선명하게 보이는 천왕봉과 그 봉우리까지 길게 펼쳐진 지리산 자락을 보자 약속이 하나 떠올랐다. 그 약속을 하자마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출현했고, 바이러스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2년 전부터 꿈꾸던 지리산 종주를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거부하던 백신 접종도 공공의료연대 파업 외에 지리산 대피소 출입 때문에 했었다. 언젠가 폐쇄된 대피소가 개방되면 백신 패스는 필수일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리산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내 숙원인 첫 종주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해남 출신 고정희 시인이 조난당한 지리산, 그 6월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쩌자고 지리산 가까이에 왔을까. 그 밤에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천황봉에서 본 천왕봉

 


☆ 길에서 본 소들-요천로 1

2022년 3월 7일 월 요천로 2코스 중 월석교~등구교 왕복 5km     


귀정사 오는 길에 본 ‘요천 100리 숲길’ 나무 표지판을 찾아 헤맸다. 장수군까지 갔다가 돌아와 임시투표소였던 산동면행정복지센터까지 갔다가 겨우 찾았다. 그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강 따라 난 가로수 길은 봄이 완연하면 진가를 발휘할 듯해 보였다. 잘 다져진 길에 버스만 가끔 다닐 뿐 사람이 없어 좋았다.      


남도에서 눈에 띄는 건 소들을 비교적 쾌적하게 사육한다는 점이다. 햇볕 잘 드는 우리에 한가로이 앉고 선 소들을 보면 적어도 도살장에 가기 전까지는 편하게 살고 있음에 안심이 된다. 동물에게도 존중받을 생명권이 있다. 더럽고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유전자조작이나 제 동족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지 않을 권리, 강제 임신과 출산 후 강제 분리와 강제 유착을 겪지 않을 권리, 무분별하게 도살당하지 않을 권리 등. 


남도 도보 순례를 하면서 소들과 많이 마주쳤다. 소들은 예민해서 내가 쳐다보고 있으면 피하기가 쉬운데 가끔 호기심에 다가오는 소들도 있다. 그들도 나를 쳐다본다. 그들의 눈을 쳐다보면 소고기를 먹는 자신이 불편하다. 개를 키우면서 보신탕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윤리적 축산을 통한 고기를 최소한으로 먹고자 한다. 공생하는 생명체에 대한 감사함으로 먹되 존중하고 싶다. 존중한다는 건 뭘까? ‘높이어 중하게 여김’까진 아니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 소도 나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땅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스트레스가 많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화’가 먹는 인간에게도 쌓인다는 게 틱낫한 스님이 <화>에서 말씀하신 요지다. 그것이 곧 ‘연기(緣起)’이자 ‘온 생명’이다.      


등구마을까지 걸어갔다 되돌아왔다. 12시 점심시간까지 귀정사로 돌아와야 해서 더 많이 걸을 수 없었다. 


     

요천 100리 숲길

    


☆ 산동이 산책-요천로 2

2022년 3월 14일 월 요천로 2코스 중 등구교~산동교 왕복 5km     


귀정사를 벗어나는 길에 산동이를 보았다. 산동이는 집행위원장인 쉼터지기 님이 키우시는 개로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금륜이와 같은 종인 웰시코기다. 금륜이는 지난해 말 포토청 단체사진전 <위로>에 출품한 내 사진의 주인공이다. 그 금륜이와 닮았지만 언제 목욕했는지 알 수 없이 냄새나는 산동이를 차에 태웠다. 산동이는 계속 짖었다.      


요천로 평선마을에 주차하고 산동이를 차에서 내렸다. 그새 차 안이 산동이 털과 발자국으로 엉망이 되었다. 어차피 걷는 거 겸사겸사 산동이 산책도 시키자고 데리고 나왔는데 개 속도에 맞추니 세월아 네월아 온갖 냄새 맡기를 기다려야 했다. 걸음이 너무 더뎌지자, 도보 순례에 왜 개를 끌고 나왔을까 싶었다. 얼마나 걷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걷는 게 중요한가 자신에게 질문했다.     


귀정사에서 몇 년간 목줄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던 산동이는 1~2년 전 아랫마을 개에게 목이 물려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온종일 묶여 있는 산동이를 멀리멀리 산책시켜 주는 게 혼자 많이 걷는 것보다 의미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살리자고 걷는 탈핵도보순례 아닌가.      


지난주에 이어 이날도 거리 확보는 포기. 다음 다리인 산동교까지 걷고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왕복 5km를 걷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산동이는 짖지 않고 지친 듯 뒷좌석에 엎드려있었다. 집에 돌아온 산동이가 시원하게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주차하고 더러워진 차 내부 꼴을 보니 역시 내 오지랖은 대책이 없구나 싶었다. 며칠 후 산동이를 목욕시켜 주었다.      


산동이 산책



☆ 음악이 있는 산-만행산 천황봉 3

2022년 3월 16일 수 천황봉(909.6m) 왕복 5km     


세 번째 천황봉에 올랐다. 쉼터 세 분과 함께. 

단체행동이 버거워 빠지려고 했는데 혼자 속도를 내도 좋다고 해서 막판에 참여하기로 했다. 실은 멀리서라도 지리산 천왕봉과 그 능선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올라가는 도중 동행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듣다 보니 하게도 됐다. 그럴까 봐 안 가려고 했었다. 솔직함이 무기이던 나는 요즘 말수가 줄었다. 감정 조절 못 해 하수구처럼 쏟아내던 말들이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듣는 누군가는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었다. 반복되는 내용이 한두 번 넘으면 다들 지친다. 그리고 멀어진다.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말의 농도가 진하고 비약도 심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웬만해선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나이 탓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귀정사에 오면서 마음의 벽을 쳤는지도 모른다. 더는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자 까만 독수리 두 마리가 머리 위를 선회했다. 처음 혼자 왔을 때 본 까마귀 한 쌍보다 멋진 건 몸집이 커서보다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아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러면서도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뿐이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글을.     

 

둘씩 시간 차이를 두고 정상에 다 모였다. 준비해 준 간식을 먹으며 쉴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졌나 보다. 울진에서 삼척까지 애타던 강원도 산불을 끈 비가 내리던 날 발견한 노래인 Honne의 <la la la that’s how it goes>를 휴대전화기로 틀었다. 나지막하니 느리게 라~라~라~ 노랫소리 들리는 그 순간이 좋았다. 사는 게 뭐 있어. 이렇게 산에 오르고 간식 먹고 음악 들으면 그만이지 싶었다. 멜로디도 훈훈했지만 어쩌면 노래를 듣는 동안은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원에서 말없는 봄을 맞았다. 


독수리 한 쌍


글/사진 : 일곱째별 


* 길목인 <길뜬별 / 남도 순례길 11- 남원에서 봄바람따라> 중 앞부분입니다. 

http://www.gilmokin.org/board_02/17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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