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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Feb 17. 2023

남도 순례길 13-진도 팽목항 기억

다시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8주기 


# 지난 이야기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2017년 2월, 문학창작기금 수혜 후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았다. 

이후 산티아고 순례를 했다. 

9월, <길목인> 창간에 편집위원과 필진으로 함께했다. 

2018년 6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시작했고, 11월에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9년 8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해산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여름과 겨울이 손짓을 할 때면 이번 순례길은 어디일까 하며 톰으로부터 올 소식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순례단원들과 다음 순례 때 만나자는 약속도 할 수 없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터덜터덜 걸으며 나는 다짐했다. 톰이 없어도 순례할 것이다. 순례단이 없어도 걸을 것이다. 비록 성스러운 숙소를 제공해 주던 성당을 비롯한 종교기관, 반기며 밥을 사주던 지역 활동가들은 없겠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 침묵으로 걸으리라. 몸자보 달고 지하철 타면 시비 걸어오는 노인이 있는 서울, 부실공사를 알리느라 단식하는 제보자가 있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공극이 계속 발견돼도 멈출 생각을 안 하는 영광 한빛 핵발전소, 고준위 핵폐기물이 넘쳐나는 경주 월성 중수로 핵발전소, 그리고 울진 한울 핵발전소……. 나는 이미 순례자가 되었고 내 걸음도 톰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0년부터 세 번의 순례로 7번 국도를 걸었다. 

탈핵 벗들이 함께해 주었다.

2021년 4월,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모 도보 순례로 팽목항부터 진도를 종단했다. 

18번 국도였다. 

그때까지 내가 쓰던 글은 <탈핵 이야기>였다. 

같은 해 6월부터 혼자 18번 국도를 걸었다. 

그때부터 이 글은 <길뜬별>이 되었다. 

연내에 18번 국도 도보 순례를 완주했다.

2022년 1월, 하동부터 고리 핵발전소까지 걸었다. 

지난해 4.16 추모 도보 순례를 제안했던 니키가 올해는 4.3 항쟁을 추모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무언가를 하기로 한 건 내게는 일종의 약속이었다.      

탈핵 벗 총 다섯 중 제주 4.3 항쟁 추모 도보 순례가 최종적으로 가능한 사람은 나와 니키 둘 뿐이었다.


2022년 3월 말, ‘봄바람 순례단’과 연대한 사흘을 하루 만에 기록해야 했다. 


4월 첫날 오전까지 원고 마감을 하자마자, 해남에서 진도 우수영여객터미널로 가서 주차했다. 

14:30, 10kg이 넘는 무거운 배낭 메고 텐트를 들고 퀸스타 2호를 탔다.      


다음 날 니키가 제주도로 오셨다. 이틀 후 니키는 서울로 가셨다. 

제주에서의 보름간을 지금은 쓸 수 없다. 

다만 2년 전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투쟁 때 함께했던 두 사람에게 주려고 제주에서 돌아오자마자 만들어서 간직하고 있던 선물을 끝내 전해주지 못했다. 걷고 쓰는 게 생활의 전부였던 내게 걸을 수도 쓸 수도 없던 제주의 시간은 처참했다.      


간절히 기다리던 4월 15일. 오전 7:06에 장문의 문자가 왔다.      


‘04월 15일 (금) 제주-추자-우수영 구간 운항 예정이던 퀸스타 2호는 금일 해상의 풍랑 주의보로 인하여 결항되었습니다.’      


악몽 같던 나날 끝 절망의 종지부였다. 하지만 나는 제주공항으로 갔다. 

버너용 부탄가스를 버려야 했고, 따로 산 텐트 팩들은 수하물로 부쳐야 했다. 

09:30 출발 예정이었던 배보다 더 빠른 09:10 광주행 비행기를 아슬아슬하게 탔다. 

결항인 배와 달리 비행기는 이륙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탄소 절감 비행기였다. 


10:05, 광주공항은 처음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화정역에서 버스를 타고 유스퀘어 터미널로 갔다.

해남, 남창, 우수영 중 제일 빨리 출발하는 버스를 5분 전에 탔다. 

11:05 우수영 행이었다.      


두 시간 후 우수영 터미널에 내리자 지난 10월에 보았던 우수영 성당이 길 건너에 있었다.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십자가와 성모상과 예수상이 검붉은 천으로 가려 있었다. 

신은 이제 내게서 얼굴을 감춘 것인가. 

피폐한 나는 지난번과 반대의 기도를 했다. 그 두 기도가 하나로 만나기를.     


우수영여객터미널까지 걸었다. 

보름 만에 만난 내 차 탈핵브리드는 무사히 그대로였다. 절친한 친구를 만난 듯 어찌나 반갑고 든든한지 몰랐다. 뭍으로 나왔고 차도 찾았으니 못 갈 데가 없었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기다려준 탈핵브리드에게 휘발유를 넣어 주고 구석구석 세차도 해 주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팽목항 빨간 등대에는 지난해 걸어두고 온 소중한 표식이 일 년 동안의 강한 햇빛과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매달려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 2022년 4월 15일 금 오후 3시 <2022 세월호 참사 제8주기 기억문화제

팽목항 빨간 등대 앞에는 예술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현대무용과 한국무용과 사물놀이로 세월호 참사를 추모했다. 거센 바람 속 맨발 춤사위는 ‘그 아픔이 너무 깊어’라는 제목처럼 처연했다. 빨간 등대 앞 공연은 조촐하게 끝났다.      


그 아픔이 너무 깊어

  

공연이 끝난 후, 노중년 남자분이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내 카메라 가방에 달린 몸자보를 보고 다가오신 그분은 2015년에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하셨다고 했다. 

고창에 사시는 그분은 세월호 참사가 나고는 팽목항에서 몇 달간 사셨고, 해마다 참사 때면 그곳에 오신다고 했다. 

그분이 내게 물으셨다. 

“탈핵과 세월호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


작년에 내가 관지와 청명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질문을 주로 하는 나는 답변을 준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답이 나왔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일이니까요.”     


저만치 청명과 대전 및 지리산 친구들이 왔다. 

우리는 세찬 바람을 피해 빨간 등대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세월호, 지리산 천일기도문>을 함께 낭독했다.      


세월호, 시간은 여전히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당신들은 ‘오직 생명’ 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간절히 기원합니다. 

가리워진 진실이 환하게 드러나서 가신 이는 한을 풀고 편히 쉬기를!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빠진 유가족들이 몸과 마음 치유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바람이 멎은 듯 기도문 외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이틀 후 하죽도에 함께 가기로 했던 청명은 날씨 때문에 섬에서 원하는 때 못 나올까 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청명과 친구들과 기억의 숲에 들러 진도 휴양림에서 저녁밥을 먹고 산책 후 헤어졌다. 

어두운 밤길을 두 시간 달려, 맡겨둔 김치와 동백을 찾으러 해남으로 갔다.           



☆ 4월 16일 토 오후 3시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

작년 가을에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한 내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초대손님으로 온 정미이모와 나와 함께하자고 나무가 제안한 약속이 하나 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제주에서 기를 쓰고 탈출했으며, 전날부터 진도와 해남을 오고 갔다. 

그러나 팽목항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에서 준비한 것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침묵하라.’ 

부끄러웠다. 


기억을 철거할 수 있는가

     

정미이모는 어머니와 먼저 떠났고, 나무도 화야와 돌아갔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팽목항에 남았다.      



걸어갈 수 없다면


글/사진 : 일곱째별



* 길목인 <길뜬별/남도 순례길 12 최종회 - 진도 팽목항과 하죽도> 앞부분입니다. 

http://www.gilmokin.org/board_02/1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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