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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순례길 0
마지막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2019년 여름 부산 고리핵발전소~경주 월성핵발전소 75.2km

by 일곱째별


2017년 800km 산티아고 순례 이후, 2018년 여름부터 2019년 겨울과 여름, 총 3회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했다.

그중 마지막 여름 7번 국도 구간이다.

이 단체 도보순례가 사라지고 나는 혼자라도 걷겠다며 길을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끝은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




2019년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는 시작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출발 3주 전에 날아온 삼척핵발전소 예정구역고시 철회 소식 덕분이었다.

2010년부터 9년간, 1982년 첫 핵발전소 예정구역 지정부터로 치면 37년간 삼척시민과 전국의 탈핵희망을 염원하는 이들이 거둬낸 승리였다.


6월 21일 금 늦은 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균도 아빠의 <발달장애인과 세상 걷기> 사무실에 톰, 니키, 멘나, 소산, 청명과 내가 삼척, 제주, 청주, 서울에서 모였다. - 우리는 탈권력과 평등을 위해 직함을 생략한 호칭을 사용한다.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368구간 : 고리핵발전소~울산 온양 남부통합보건지소 17.6km


오전 9시,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 2013년 6월 6일부터 7년째 이어온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의 2019년 여름 순례를 기자회견으로 시작했다.

그곳은 2년 전인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 1호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한국사회가 탈핵국가로 출발함을 선언한 장소였다.

그사이,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로 인한 건설 재개로 건설취소소송 1심 승소에도 불구하고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한 WTO 2심 승소만이 희소식이었다.


오전 10시, 고리 핵발전소에서부터 울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40분쯤 지나 신고리 5,6호기 예정 지역 앞에서 석 달째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최현철 씨를 만났다. 그는 6호기 목공 담당기술자였는데 부실공사 내부고발을 한 후 지금까지 허허벌판에 있었다. 그는 예산이 삭감되고 인건비가 줄어듦에 따라 기능공들이 단가 문제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 신고리 6호기 터빈 건물 구조물 기초공사 과정에 용접을 하면 녹이 슬어 안 되는데 주철에 용접이 진행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사고 나면 끝장나는 핵발전소에 부실공사라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기자회견 때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하 탈핵울산공동행동) 측에서 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052-296-5977)를 공지한 이유가 있었다.


순례단은 8km 정도 걷다가 용석록 울산탈핵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차를 타고 경주로 이동해 오후 2시 <핵폐기물 이제 그만, 10만 인 행동> 집회에 잠시 참석했다가 다시 돌아와 나머지 10km를 걸었다.

예정보다 두어 시간 늦은 오후 7시, 울주군 남부통합보건지소에서 순례 나눔을 한 후, 김진석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의 안내로 진하해수욕장에서 밤을 보냈다.

이번 순례가 이전과 다른 점은 성당에서 성당으로 이동하던 경로를 지역사회운동가들이 담당하며 숙식이 다양해진 것이었다.


DSC02560.JPG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369구간 : 남부통합보건지소~울산시청~중구보건소 17.3km


신정시장에서 살아있는 울산을 보았다. 수고한다고 콩국물을 나눠주는 상인들의 반응은 호의를 넘어 감동이었다. 울산 시민들은 핵발전소 사고 위험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그만큼 깨어있는 의식을 보여 주었다.

터미널 식당의 점심식사도 풍성했고 순례 후에 들렀던 ‘조금은 느린 카페 902’의 대추라테는 지친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DSC02644.JPG 울산시 남구 월평로 신정시장 내 6월 민주항쟁의 터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370구간 : 중구보건소~경주 외동읍 행정복지센터 18.4km


아침 8시 반, 중구보건소에서 한상진 울산대학교 교수(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서민태 탈핵울산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석록과 톰, 니키, 청명과 나, 모두 일곱 명이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착한 북구청에는 윤종오 前(전) 북구청장이 중소상인을 지키기 위한 소신행정을 하다가 코스트코 구상금으로 인해 자택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면제 촉구 농성을 22일째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울산북구청이 구상금으로 인한 아파트 경매를 전격 취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길에 희망이 꽃핀 듯해 더욱 기뻤다.)


울산 북구 농소공영차고지를 지나 한 활동가가 합류했다. 전날 함께 걸었던 임영상 탈핵울산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가 있는 약국에 들러 상비약을 받았다. 인적이 드물고 깔끔한 동천 제방길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와 소수인권과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경주로 넘어오자 장춘과 최수미 탈핵울산공동행동 前(전) 대표가 합세했다.

잠시 후,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울산의 지극한 정성과 헤어짐이 아쉬웠다.

그러나 경주환경운동연합에서 마련해 준 불국사 앞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 후 들른 <음악이 있는 집 디자인 목공방>은 예술문화의 풍성한 미감으로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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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373.JPG 음악이 있는 집



2019년 6월 25일 화

371구간 :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월성 핵발전소 21.9km


371구간은 장거리에 산을 넘는 험난한 경로였다. 그러나 순례단의 피곤을 말끔히 날려버리는 안강 세 언니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모니카, 루시아, 아녜스. 그들은 배낭 가득 삶은 달걀, 오이, 빵 등 간식을 쟁여온 어머니 마음에 길가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인사를 던지는 소녀 감성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과 주미 사무차장과 톰, 청명, 나는 수월하게 산을 넘어 월성 핵발전소까지 다다랐다.


DSC02778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우리들은 씩씩한 탈핵 순례단.JPG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홍보관 옆 농성장에 황분희 월성이주대책위원회 부회장님이 계셨다. 촛불집회에서 보고 무작정 취재하러 내려온 그 여름 이후 나는 국회, 광화문, 청와대 앞, 후쿠시마 등 여건이 닿는 대로 황분희 부회장님과 함께했다. 그러나 투쟁한 지 1762일이 되어도 나아리 주민들은 핵발전소 코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순례단은 고준위핵폐기물이 잔뜩 쌓여있는 중수로형 핵발전소인 월성핵발전소 1km 앞 황부회장님 댁에서 묵었다. 고압선 철탑 아래를 걸으면서 시작된 두통에 저녁식사 중 자극성 접촉 피부염 반응이 일어났다고 하면 호들갑 떤다고 하겠지만 그건 내 몸이 치는 아우성이었기에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광부들은 갱도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려갔다고 한다. 메탄, 일산화탄소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친환경유기농위주 식단을 20여 년째 유지하고 있는 내 몸이 핵발전소 앞에서 키운 채소를 먹고 그렇게 반응했다. 환경요인이든 심리요인이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런 곳에서 주민들은 30년째 살고 있었다.


DSC02867.JPG 경주 월성 핵발전소 앞 낚시하는 사람들


DSC02872.JPG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나아해변



글/사진 : 일곱째별



* <길목인>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이야기 8-2019년 여름, 마지막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중 일부를 게재했습니다.

http://www.gilmokin.org/index.php?mid=board_02&page=4&document_srl=8214




'이제 여름과 겨울이 손짓할 때면 이번 순례길은 어디일까 하며 톰에게서 올 소식을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순례단원들과 다음 순례 때 만나자는 약속도 할 수 없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터덜터덜 걸으며 다짐했다.

톰이 없어도 순례할 것이다. 순례단이 없어도 걸을 것이다. 비록 성스러운 숙소를 제공해 주던 성당을 비롯한 종교기관, 반기며 밥을 사 주던 지역 활동가들은 없겠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에서 침묵으로 걸으리라. 몸자보 달고 지하철 타면 시비 걸어오는 노인이 있는 서울, 부실공사를 알리느라 단식하는 제보자가 있는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공극이 계속 발견돼도 멈출 생각을 안 하는 영광 한빛 핵발전소, 고준위 핵폐기물이 넘쳐나는 경주 월성 중수로 핵발전소, 그리고 울진 한울 핵발전소……. 나는 이미 순례자가 되었고 내 걸음도 톰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여름 마지막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중에서


자, 이제부터 일곱째별의 7번 국도 도보순례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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