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지났다. 정규수업시간이 끝나고 하루의 시간은 남아 있고 아이들은 놀고 싶다. 몇몇 아이들이 모여 운동장 스탠드에서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봄 햇살이 따뜻하다.
아이들이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학교는 방음이 잘 안 된다. 보건실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는다.
"선생님 지퍼백 있어요?"
보건실에 몇 번 방문했던 2학년 학생 두 명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묻는다. 한 명은 두 손을 오므리고 있고, 태도가 공손하다. 다른 한 명은 그 밑에 손을 받치고 있다. 신중한 태도다. 보건교사라 그런지 지퍼백이 왜 필요한지 궁금하기보다는 둘 다 손이라도 다친 건가 싶은 짐작부터 먼저 하게 된다. 하지만 손 다쳤냐는 단정적인 질문보다는 어린 학생에게 친절하게 열린 질문을 해 본다.
"무슨 일이니?"
"꽃을 가져가려고요."
꽃? 당황스럽다. 먼저 다치지 않았는데 보건실에 방문한 것이 당황스럽다. 두 번째로는 꽃을 가져가겠다고 했으니 꽃을 꺾었다는 것 같은데, 손에 꽃을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손안에 꽃을 둘둘 말아 온 것 같았다. 왜 꽃을 둘둘 말아온 거지? 궁금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름 저 친구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꽃을 그렇게 들고 가기도 하는구나, 하고 납득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계속해 보았다.
"아 그렇구나, 꽃을 가져가려고 지퍼백이 필요하다고 했구나~"
"네, 친구한테 쓸 편지에 붙일 거예요."
친구에게 카톡도 문자도 DM도 아닌 편지를 쓰겠다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 그 시절 복고의 감성이 물씬 풍긴다.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나려는데, 예고도 없이 꽃을 말아 쥐고 있던 손을 내 손 위에 편다. 꽃향기가 물씬 풍기고, 촉촉하고 따끈한 부스러기 같은 노란 꽃잎이 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나로서는 보여주겠다는 말도 없이 일어난 일이라 또 당황스러운데, 그 친구는 잠깐 맡길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손을 펴는 동작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오후 2시의 보건실 풍경이 그랬다.
"이거 친구에게 줄 편지에 붙일 거예요?"
"네"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지퍼백은 너무 커서 사이즈가 안 맞을 것 같아. 종이타월에 포장해 줘도 될까?"
둘 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다고 한다. 나는 내 손에 내려온 꽃 부스러기를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 친구처럼 공손한 태도로 받힌 채 종이타월을 꺼내 편지지에 붙이기 좋도록 얇게 포장해 주었다. 누구에게 편지를 쓸 거니, 어떤 편지를 쓸 거니, 우리 학교 화단 어디에 이런 노랗고 작은 꽃이 폈던 거니, 선생님은 목련이 핀 것 밖엔 보지 못했는데, 하고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꽃이 잘 포장되고 있는지 보고 있는 두 얼굴이 너무나도 지엄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포장에 집중했다.
종이 플라스타로 한번 붙여서 건네주니 이리저리 보고는 옆으로 흐를 것 같다고 옆에도 붙여 달라고 요청한다. 솔직히 흐를 수 있는 구조도 아니지만,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붙여 달라는 대로 두세 번 더 마감처리를 해 주었다.
포장하여 건네주니 걱정을 덜었는지 통통 뛰면서 고맙다고 좋아한다. 더 격식을 갖춰 주고자 작은 사이즈의 쇼핑백을 꺼내 담아가라고 하니 다시 조심조심하며 가방에 넣는다. 쇼핑백이 작지만 포장된 작은 노란 꽃보다는 훨씬 큰데도 말이다.
그러고서는 두 손으로 보건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내가 하지 못한 왜라는 질문들을 모른 채 나간다.
그렇지만 다음에 오면 편지 잘 썼냐고 물어볼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