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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30. 2021

독일에 도착하면 뭘 먼저 해야 하지?

약속을 잡는 문화에 익숙해지기

밤 사이 차 유리에 성에가 가득 생겼다. 겨울에 비가 많이 오고 더 습한 독일에서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늘 이렇게 성에가 가득 끼어있다.


히터를 켜고 좀 기다렸다가 대충 긁어내고 출발하는데 이상하게 차가 잘 안 나간다. 자꾸 삐삐- 하길래 살펴보니 주차 브레이크를 안 내렸다. 게다가 쇼핑몰 주차장에 주차하러 올라가다가 시동을 한 번 꺼뜨렸고, 차가 살짝 뒤로 밀렸지만 다행히 뒤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죽다 살아났다. 아이구 정말 수동운전은 못하겠다.



독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안멜둥 (Anmeldung), 거주 등록이다. 다행히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거주 등록이 가능하도록 간단한 서류에 서명을 해서 준비해주었고, 회사에서 계약해준 담당자분이 대신 시청에 약속을 잡아주셨다. 시골 마을이라 오래 걸릴 것도 없이 금방 등록이 끝났다. 이때 받은 거주등록증 (Meldebescheinigung)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필요하다고 하니 잘 보관해 둬야 한다. 이 날은 도움을 받아서 아무런 문제 없이 무사히 등록을 마쳤지만, 앞으로 차차 진행될 비자 신청, 면허 교환 등등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핸드폰 개통을 하는 것.

요즘은 한국에서도 인터넷으로 공보험인 TK에 미리 가입을 해 둘 수 있어서, 나도 한국에서 미리 하고 왔다. 독일에 와서 주소지를 등록하고 난 후 보험사로 부터 총 3통의 편지를 받았다. 독일은 무엇이든 등록이나 계약을 하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편지를 받게 되는데, 잃어버리면 굉장히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3통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해석을 했다. TK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려고 했더니 비밀번호가 있어야 한단다. 음.. 비밀번호를 만든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등록하기'를 눌렀더니 임시 비밀번호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아...느림의 미학이라고 생각하자.


핸드폰 개통은 그냥 보다폰에서 충전이 가능한 prepaid 유심을 샀다. 솔직히 한국에서도 폰 살 때, 약정 조건이라면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라 독일에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매 월 필요한 금액만큼 충전해서 쓰는 것이 나중에 해지할 때도 간편할 것 같아서 선택.


가장 쉽지 않았던 은행 계좌 만들기.

독일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를 받는다. 학생은 면제이고, 한 달에 대략 6-8유로 정도. 그래도 급여를 해당 계좌로 받으면 계좌 유지비와 현금 출금 수수료가 무료인 은행이 있어서, 약속을 잡으려고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독일은 은행, 병원 어디든 무조건 약속을 잡아야 한다)

상담원이 폭풍 같은 독일어를 쏟아내는 바람에 Bitte? (뭐라고요?)를 남발한 후, 겨우겨우 가장 가까운 지점의 담당자가 나에게 전화를 주기로 약속. 약 한 시간 후에 해당 지점에서 전화가 왔길래,  '미안한데 나 독일어 잘 못 해. 천천히 말해줄래?'라고 선수를 쳤더니 다행히도 영어로 이야기해준다. 휴. 비어있는 시간이 없어서 일주일 뒤인 다음 주 수요일로 겨우 약속을 잡았다.


 차로 20분쯤 떨어진 옆 동네 은행에 가서  '저 OO양과 약속을 잡아놨어요'라고 했더니, 친절한 언니가 '그게 바로 저예요. 저 방에 가서 이야기하면 돼요' 란다. 커피 줄까 차줄까 같은 간단한 독일어 대화로 벌써 나의 수준을 파악한 언니가 친절하게 모든 상담을 영어로 해줬다. 수많은 종이에 사인을 한 후에, 은행 계좌 만들기 성공! 운이 좋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제휴된 은행이라 계좌 유지비가 없고, 3개월 유지하면 100€를 보너스로 입금해주고, 연회비를 낼 필요가 없는 신용카드도 만들어준다. 메일로 정기적으로 계좌 이용 내역을 받는 서비스도 신청 가능하고, 유럽 내 송금은 수수료도 없음!

아마 한국사람이 볼 때는 이게 뭐가 혜택이냐 생각하겠지만, 여기는 계좌를 유지하는 것도 돈이 드는 독일이니까. 게다가 계좌 이용내역을 이십여 일에 한 번씩 스스로 뽑지 않으면 은행에서 뽑아서 우편으로 보내주는데, 이때마다 약 2€씩을 떼어가는 곳이다.

당연하게도 EC카드(체크카드)와 신용카드는 각각 우편으로 배달될 예정이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PIN CODE,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기 위한 CODE 등을 포함해서 총 7통의 편지를 받을 예정. 우편물이 풍년이다.

덕분에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사고 싶은 게 편지 봉투 뜯는 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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