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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pr 11. 2021

무뚝뚝한 독일인들과 가까워지기

 첫 출근을 하고 나서 한동안 방황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할까. 한국에서 그렇게 오래 직장을 다녔음에도 이직은 처음이라 괜히 안절부절못했고, 완벽한 자율 출퇴근제도 낯설었으며, 점심시간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의 상사는 팀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었고,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가장 강조한 것은 업무시간이었다. 독일에서는 점심시간(혹은 휴식시간까지 포함해서)을 빼고 하루 최대 열 시간을 일할 수 있다. 이를 넘길 경우 나의 상사뿐 만 아니라 회사 전체가 곤경에 처할 만큼 철저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규정이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으로 10시간을 넘겨야 할 경우에, 융통성 있게 다음날 그 시간을 반영한다던가 하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가능하기는 하지만. 다들 업무 시간에는 정말 일만 하는 분위기였고, 자리에서 폰을 보거나 커피 마시러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드물었다. 점심시간에도 그냥 자리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는 동료들도 상당히 많았다. 


 또 하나 나에게 정말 새로웠던 것은 재택근무였는데, 집이 너무 멀거나, 아이를 키우거나 하는 동료들은 일주일에 1~3회 정도 자유롭게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나 병원, 은행 등은 업무 시간 내에만 갈 수 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 예약 시간에 맞춰 잠시 다녀올 수도 있고, 택배가 오는 날에는 집에서 일을 하며 직접 택배를 수령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독일은 택배가 반드시 사람에게 수령되어야만 해서, 집에 없을 경우 이웃사람이나 지역 내 택배센터로 전달된다. 너무 무겁거나, 당장 필요한 물건일 경우, 집에 없으면 곤란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서 재택근무 제도가 정말 유용하다. 상호 간의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참으로 멋진 제도라고 생각.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제도들 때문에 동료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체로 독일인들은 먼저 다가오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small talk이라고들 하는 사소한 잡담을 즐기지도 않는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굳이 사교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도 굳이 가서 말을 거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지만 약 2년이 지난 지금은 독일인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바로 도움을 청하는 것.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청했을 때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이미 알고 있던 동료가 있었는데, 함께 점심을 먹다가 '나 토요일에 중고차 보러 가는데, 가서 뭘 체크하고 물어봐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나 어떡해?!'라고 했더니, 본인이 학교 다닐 때 자동차 공학을 배웠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비소를 운영했었다며 뭘 확인해야 하는지 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장문의 메일로 생각도 못했던 포인트들이 깨알같이 써 준 것.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며 혹시 차 보러 갔는데 문제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기본적으로 동료 간 개인 폰 번호는 공개하지 않고, 친한 사이에서만 주고받는다.) 중고차를 구매하고 나서는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어려움에 부딪쳤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지 않은 나에게는 보험 가입을 위한 질문 하나하나가 큰 고난이었다. 대각선에 앉아있는 동료에게 다짜고짜 시간이 있냐며 보험 가입하는 거 도와줄래?라고 도움을 청했는데, 질문을 하나하나 다 해석해주며 보험 가입을 완료하도록 도와줬다.


 두 번째는 독일어가 부족하더라도 독일어로, 독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언어가 갖는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여기 계신 중년의 아저씨들은 참 당연하게도 영어를 잘 못하신다. 물론 독일어와 영어는 비슷한 점이 많고 영어가 독일어보다는 쉽기 때문에 회사에 계신 분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하시지만,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짧은 독일어로 뭐든 이야기하려고 애쓰면 얼마나 그들이 마음을 쉽게 여는지 놀라울 정도. 늘 거리감이 느껴지던 한 동료도 그러했다. 실험 장비를 써야 해서 종이에 독일어로 '3월 15일 8시-11시에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써 놨더니 네가 직접 썼냐며 독일어로 이야기하기 시작. 그래 집은 구했어? 네가 어느 나라에서 왔다고 했지? 너 혼자 왔다고?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정말 용감하네. 독일 어떤 거 같아? 맥주랑 와인은 좋아하니? 내가 옹알이지만 독일어로 이야기함으로써 그제야 그는 나를 동료로 생각하는 것이다. '너 이제 바이에른주(뮌헨이 포함된 독일의 주) 살면 바바리안(바이에른주에 사는 사람)이네? 근데 회사는 헤센주(프랑크푸르트가 속한 주)니까 헤시쉬(헤센 지역 방언) 배워봐' 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내가 독일어로 막힘없이 대화하게 되는 날, 진정한 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그 날이 오면 독일을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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