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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01. 2021

이케아 조립, 독일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

 독일에서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사와 가구 조립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과 같이 살았고, 독일로 올 때는 캐리어 2개와 박스 5개(국제우편)만 가져왔기 때문에 모든 가구를 새로 사야 했다. 침대 프레임이라던가 옷장 같은 것은 직접 차에 싣고 올 수 없으니 배달을 시키기로 하고, 먼저 온라인 몰에서 구매할 품목을 추려보았다. 출국하기 전 한국에서 엄마랑 이케아 탐방을 가서 사고 싶은 매트리스나 침구 같은 건 대충 정해둔 상태였지만, 당장 컵 하나, 접시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장바구니에 마구 담다 보니 리스트가 감당할 수 없이 길어졌다. 게다가 배송을 원하는 날에 못 받으면 어떡하지, 조립은 혼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아져서 한참 동안 네이버 블로그의 후기들을 검색해보았다.


 '매트리스 돌돌 말려져 있어서 들고 올 수 있어요', '여자 혼자 침대 조립 가능해요'와 같은 희망적인 후기들을 보고 나서, 비장한 마음으로 이케아에 갔다. 발바닥이 아프도록 이케아를 돌고 돌아 장바구니에 담았던 물건들을 직접 확인하고, 주문할 품목을 확정했다. 당장 필요한 식기 몇 개와 조리도구를 카트에 담고 나서, 매트리스까지 사 와야지 생각했는데, 말려져 있는 매트리스를 보는 순간 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걸 직접 가져갔다는 사람은 누구지. 무게 25kg에 부피도 너무나 커서 더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계획을 변경해서 바닥에서 깔고 덮고 자려고 이불을 2개 사고, 매트리스 커버, 담요도 하나 샀다. 조그마한 피아트의 트렁크에 꽉 채우고, 머물고 있는 호텔에 돌아와서 온라인 주문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배송이 가능한 날짜가 일주일 뒤라 이사 날짜와 어찌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걸 다 사들고 오다니..... 결국 이사할 때 호텔에서 집으로 다 옮겨야 하는데 사서 고생을 한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혼자 끙끙 2층까지 옮긴 짐들


 이사를 하고, 대충 집 청소를 하고, 이케아 배송을 받고 난 후에는 조립 지옥이 열렸다. 조립 서비스는 제품 가격의 20%라 너무 아깝기도 하고, 블로그 후기들을 읽다 보니 혼자 조립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었다. 비록 첫 번째로 침대 조립을 시작하자마자 처참히 깨지고 말았지만.


 이케아에서 침대를 2명이서 조립하라고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로 길이가 이미 150cm라 내 키와 큰 차이가 없고, 기둥과 헤드가 철제 프레임이라 매우 무겁다. 아래쪽 다리를 먼저 조립하고, 위쪽의 일체형 헤드-다리를 조립해야 하는데,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벽에 헤드를 기대어 놓고 요가 매트와 이불의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순조롭지 못하게 갈빗살을 반대로 까는 바람에 다시 뒤집어서 또 깔아야 했다.  





 그래도 가장 어려웠던 침대 조립을 끝내고 나니 다음날 옷장과 서랍장도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옷장은 혼자 조립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기둥만 있는 행거 같은 형태의 옷장을 산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다음으로 도전한 식탁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메탈 소재의 프레임과 다리는 서로 뭔가 맞지 않는지 나사가 돌아가지 않아 한 시간이 넘게 끙끙거렸고, 그 와중에 부품을 빼먹고 조립해서 식탁 상판에 멋들어진 구멍도 6개나 생겼다. 의자는 정말 심플한데, 악력이 부족해서 하나를 조립하고 나서 포기해 버렸다. 집에 젤 빨리 오는 손님은 자동으로 의자 조립하기 당첨이다. 오히려 소파는 좀 무겁긴 해도 나사 6개면 조립이 끝나서 왠지 싱겁다 싶었다.


 이 기세를 몰아 복도 벽에 행거를 달기 위해 드릴을 잡았다. 수평을 잘 맞추고 구멍 뚫을 위치도 표시했는데, 구멍만 뚫으면 되는 게 아니라 나사가 고정될 수 있도록 안에 플라스틱 같은걸 넣어야 한다는 걸 전혀 몰랐다. 어제 드릴이랑 같이 산 나사 세트에는 정말 온갖 나사들만 100여 개인데... 게다가 화장대 옆에 달려고 산 조명은 그냥 다는 게 아니라 플러스 마이너스 전선을 연결해야 하는 제품이라 다시 곱게 싸 두었다. 반품할 아이들을 가지고 또 이케아에 가야겠다.


 어쨌든 3박 4일간 화장대, 신발장, 화장실 수납장 등등등에 이르기까지 조립 대장정을 끝내고, 새로 산 청소기를 돌리고, 마룻바닥까지 싹 닦아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조립할 게 더 이상 없다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이제 막 재밌어졌는데. SNS로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벌써 독일 여자 다 되었단다. 나도 이케아에 가는 누군가에게 말해줘야지. "여자 혼자 침대를 조립할 수 있어요!"


결국 벽에 구멍을 뚫고 거울과 조명까지 달았다. 지금도 볼 때마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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