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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03. 2021

진료날짜 기다리다 다 낫는 신비한 독일 병원(1)

독일 병원 방문기

 혼자 독일에 있으면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아무래도 아플 때이다. 누가 봐줄 사람이 없기도 하고, 병원 시스템도 다르고,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100% 전달하기가 힘들다는 점도 있다.


 독일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모든 직장인의 만성 질병인 어깨-목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한국에서는 도수치료도 종종 받았고,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면서 열심히 관리했는데, 독일에서는 하루하루 생존해나가느라 신경을 못쓴 탓이었다.


 독일에서 병원을 가고 싶다면 먼저 예약을 해야 한다. 한국처럼 무작정 찾아갔다간 퇴짜 맞기 십상이다. 구글에서 집 주변 정형외과를 검색해서 평이 좋아 보이는 곳을 추렸다. 예약할 때 독일어로 뭐라고 이야기할지 먼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몇 차례 해 본 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친절하게도 전화를 받는 직원분은 내가 못 알아들으면 다시 이야기해 주었고, 아직 Hausartz(hause doctor, 주치의)가 없는데도 예약을 받아주었다. (보통은 우선 Hausarzt를 방문해서 진료받고, 필요시 다른 전문 병원으로 갈 수 있게 넘겨주는(Überweisung) 형태이다.)


 일주일 뒤, 병원에 가기 전날 밤 잠들기 직전에 갑자기 '병원 예약 시간이 9:45가 아니라 8:45 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괜한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라 '에이 또 괜한 걱정을'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에 9:20쯤 도착했다. 카운터에서 접수하는 간호사가 '손님 예약은 8:45였어요'라고 하는 순간 이건 꿈인가 싶었다. 8이랑 9는 발음이 비슷하지도 않은데 대체 왜 헷갈린 건지 나 자신이 너무 멍청하게 느껴지는 순간. 그래도 기다리면 진료는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세 장에 이르는 진료 예약서(?)를 받아 들었다. 통증이 언제부터 있었냐, 어느 부위에 있냐, 언제 통증이 더 심해지냐, 얼마나 자주 통증을 느끼냐 등등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른 건 얼추 알겠는데, 통증을 묘사하라는 질문에서 난감해졌다. 주어진 수많은 보기 중에서 내가 아는 단어는 '불타는' 밖에 없었다. 구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욱신거리는, 쑤시는, 압박감이 느껴지는, 망치질하는 것 같은 등의 단어 사이에서 비교적 증상과 가까운 것들을 골라냈고,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영어가 더 편하냐고 물어봐주는 의사 선생님이 그 순간 어찌나 고맙던지. 어깨를 눌러보고 팔과 고개를 돌려보고, 물리치료 6회를 처방해주셨다. 보험사 카드를 보여주면 진료비는 따로 내지 않는데, 대신 영수증 같은 종이를 보험사에 내야 한다. 한국과 다르게 그 병원에서 바로 받는 것이 아니라, 물리 치료소 리스트에서 하나를 골라 직접 예약을 잡아야 한다.


 다음 날, 오후 2시쯤 물리 치료소에 전화를 했다. '예약하고 싶어요', '네, 거기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의사 선생님 처방전은 이미 갖고 있어요' 까지는 잘 대답했는데, 다음 주 금요일이 3월 1일인 줄 몰라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 금요일 아침 9시에 갈 수 있는데, 3월 1일은 몇 시에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여기 와서 예약해'라고 하고 끊어버리신다. 야박해..... 5시쯤 다시 전화하니까 다른 분이 받아서 다음 주 목요일 14:20도 예약이 가능하단다. 내 독일어 실력이 불안했는지 자꾸 '새벽 2시 아니고, 16시 아니고, 14시야. 알겠지?'라고 강조하셨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약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물리 치료사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시차는 얼마나 되냐며 엄마한테 전화하면 엄마 주무시겠네 라고 하신다. 엄마들 마음은  같은가 보다 싶다.  독일에 오게 되었냐며 궁금해하셔서 짧은 독일어로 웅얼웅얼 설명을 했다. 여성이 육아와 함께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독일은 육아휴직이 최대 3년이란다. (기본적으로는 엄마 아빠 합쳐서 14개월이고, 원하면 월급을 조정해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젊은 엄마들이 일에 복귀할  유치원에 자리가 없어서 고생하는  마찬가지라고. 이민자들이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데, 집에서 엄마들이 놀면서도 어린이집, 유치원 자리는  차지하고 있다고 불평하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도 어쨌든 외국인이고 이민자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물리 치료사님 입장에서는 나는 독일회사에서 일하며 독일에 세금을 내니까 그러한 혜택을 누릴  있는 것으로 분류하셨나 보다. 어쨌든 덕분에 도수치료 6번을 무사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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