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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Jan 22. 2024

두려운 걸까. 무서운 걸까.

복귀 일주일 전




두려운 걸까. 무서운 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밤새 내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이 기분마저 상쾌하게 해 줄 수 있었건만, 오늘은 복직 일주일 전이다. 일어나는 몸도 무겁다. 이렇게 느긋하게 일어나 아이를 마사지하며 깨워줄 수 있는 것도 이번주가 마지막이겠지.


오래간만에 기분도 낼 겸 아이를 데려다주고 커피를 사 왔다.


카톡. 평소 잘 보지 않은 프사가 뜬다.

내가 지원한 팀이 아닌, 옆 팀에 가게 되었다.

당첨된 팀의 옆 팀 팀장님이다.

지원했던 팀 팀장님. 그러나 탈락한 팀 팀장님.

팀장님은 날 데려오려 했는데 잘 안되었다며, 아쉽다고 카톡을 주셨다.

들어오면 자주 보자 신다.


사실 팀장님과는 오육 년 전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한 게 전부였다. 이번에 지원하면서도 따로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부담을 지우기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는 카톡을 받으니.. 마음 한편이 몽글해진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게 아닐까..

언제나 벼랑 끝에서 날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얼굴이 하얘져서 숨넘어갈 것처럼 돌아다녔던 그날.

온몸에 열이 오르고 기운이 없었다.

속이 매스껍고 어지러웠다.

그러나 하루종일 몇십 분 단위로 마감해야 할 자료들이 몰려있었고, 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댔다.

여느 때와 같이 한 시간도 비우기 힘든 하루였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팀에 소리를 치고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날 찾는 전화가 너무 많아서. 정확히는 나에게 자료를 독촉하는 전화들이 많아서.




머리가 흐물흐물 해질 때쯤, 우연히 친한 팀장님이 나를 보고 조퇴를 권했다.


너 그러다 죽어

농담이 아니다.



이러다 죽으면 어떨까. 차라리 파묻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다른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 저렇게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그런데. 나도.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매일 다시 오는 아침이 무섭고 두려웠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축복이 아닌 삶의 저주 같았다.

아이들이 생각났다. 참 사람 못됐다. 이 순간에도 생각나는 건 내리사랑을 준 부모님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



어렵게 쓴 몇 시간. 링거를 꽂고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힘들게 게워내며 전화를 받아야만 했지만, 링거 덕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오늘 하지 못한 업무는 내일의 부담으로 내 어깨를 다시 짓누를 테니까. 오늘은 마감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에게 한소리를 했다.

곱게 곱게만 키우고 싶었던 아이들이었는데,

곱디고운 아이들인데 아침부터 한소리 시작이다.

이렇게 숙제 안 하면 유치원에 안 보내겠다고. 고작 유치원인데. 숙제 좀 안 하면 어떠나.

어제 안 한 걸 아침부터 이렇게 화를 낼 필요가 있었는가.

이게 아침의 시작인 등원길부터 화를 낼 일인가.



고요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아이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복귀 일주일 전.

가장 두려운 건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신감 없고, 흐물흐물 우물쭈물 거리는 나.


부당한 요구에는 담담한 거절을,

불편한 언사에는 무덤덤한 얼굴을,

과한 업무에는 여유와 분배를,

마지막으로 사람에게는 따뜻한 얼굴을 가진 나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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