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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Jan 14. 2024

육아휴직 삼 년 차

심심하지 않나요?



육아휴직 삼 년 차라는 이야기를 하면 보통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심심하지 않아요?



흠.... 결혼을 하고 나서, 아니 아이를 낳고나서부터는  심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가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회사는 바삐 돌아갔고, 아이는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했으며, 집안일은 해도 해도 쌓이곤 했다.


친구 많고, 활발하며, 사람 만나길 좋아하던 내가 휴직 삼 년 동안 따로 연락하고 만난 사람은 매해 열명이 넘지 않았다. 한두 달에 한 명꼴로 만난 셈이다. 한 달이면 몇십 명과 약속을 잡았던 과거의 나에 비해 무척이나 심심하고 외로운 일정이지만, 한 번도 심심하다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휴직 전에는, 휴직만 하면 아이들 등원시키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며 종종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휴직 후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커피 한잔의 여유는커녕, 매일같이 종종거리며 집안일이며 애들 돌보기며 정신없는 하루가 챗바퀴처럼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등원시키고 난리난 집안을 청소한다. 물건들을 대충이라도 제자리에 넣고 이불정리, 청소기 돌리기, 세탁기 돌리기라도 할라치면 한두 시간은 금방이다.

오전 청소를 마치고(이는 오후에도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이란 표현이 딱 맞는 아점을 서둘러 먹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장을 본다거나, 장본 것들 또는 택배 받은 것들을 정리한다거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러 간다거나, 아이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전화를 한다거나, 계절 옷 정리를 한다거나, 냉장고 정리를 한다거나, 버릴 장난감들을 정리한다거나(정리할 물품 리스트는 매해 반복되는 계절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러고 나면 하원이다. 계절 옷 정리처럼 판(?) 이 큰 일을 할라치면 이박 삼일이 꼬박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오기 전에, 아이들 손이 닿지 않게 가정리까지 할라치면 품은 몇 배로 든다.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빼기 위해 날이 너무 춥거나 덥지 않으면 동네 놀이터든 아파트 단지 산책이든 나가야 한다. 가며 오며 아이들은 뛰다, 싸우고, 넘어지고, 울고, 피곤하다며 안아달라는 걸 반복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만도 그 모든 게 반복되기도 한다.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라치면 입 주변과 손은 난리가 나고 가져간 물티슈가 동나면, 손과 얼굴에 잔뜩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액체들이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도록 두 팔을 잔뜩 벌린 채 느그적 느그적 걷게 해서 돌아온다.






대충 씻기고, 옷을 안 입겠다고 빨가벗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잡아 겨우 옷을 입히고 나면 이제 다시 식사시간. 울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티브이를 보여주며 정신을 홀리게 한 후 한입 한입 떠먹이기 시작한다. 혼자서도 잘 먹는 첫째가 둘째 먹여주는 걸 보고는 자기도 먹여달랜다. 양쪽을 번갈아 옮겨가며 먹이는 손이 바쁘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지나면 밥 먹을 기운도 없이 진이 쫙 빠진다. 아이들이 예쁘게 잘 먹어서 아이들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게 아니라, 아이들 먹이다 진이 다 빠져서 허기조차 느끼지 못해 배부른 게 아닐까.



중간중간 혼자 먹는다고 둘째의 주변은 이미 초토화가 되었고, 메뉴에 국물이라도 있는 날에는 걸레며 휴지며 물 닦는 도구들이 총동원된다. 아. 나는 청소도 잘 못하는데. 그렇게 한바탕 거실 청소를 마치는 사이, 우리의 깜찍한 둘째는 어디선지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 돌돌 풀어놓고 있다. 그걸 보고 첫째는 질 수 없다는 양 두루마리 휴지로 공 만들기를 시전 중이다.

아이들을 애써 좋게 타이르고, 두루마리 휴지를 정리하고 첫째에겐 물건을 아껴 쓰라며 한소리 한다.

역시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던 둘째는 식탁의자를 타고 아일랜드 조리대에 올라가 손에 닿지 않게 올려놓은 붕어밥의 뚜껑을 열고 흔들어대고 있다. 주변은 온통 붉고 작디작은 붕어밥의 향연이다.




아. 아이들아. 정말 왜 그러니.

이제 내면의 소리가 목을 간지럽히고 있다. 목을 넘어 소리가 폭발하는 순간 아이들이 움찔한다.

아. 나는 이런 엄마인가. 자괴감이 몰려온다. 휴직을 하기만 하면 멋진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시간에 쫓기고 쫓겨 몰래 자는 척만 했던 엄마인지라, 시간만 주어진다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주어진다 하여도 엄마의 역할은 쉬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쫓기고 쫓기는 엄마다.


엉망이 된 아이들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티브이를 틀어 겨우 진정을 시킨 후, 난리난 집을 대충이라도 치운다. 이놈의 청소기는 대체 하루에 몇 번을 돌리는 건지. 눈에 보이는 곳만이라도 걸레질을 마치고 잘 준비를 시킨다.


양치를 하기 위해 거실을 몇 바퀴 도는 잡기 놀이가 펼쳐진다. 칫솔을 물기만 하지 도대체 문지를 줄은 모르는 녀석들을 꼭 끌어안고 양치까지 시키면 게임 끝일줄 알았는데, 역시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양칫물 뱉기 게임은 물을 입 밖으로 주르르륵 흘려가며 누가 누가 옷을 더 적시나 내기하는 시간이기 때문. 내 눈에는 다 커버린 첫째도 거침없는 양치 덕에 옷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다시 잠옷을 꺼내와 갈아입히는 동안 둘은 또 신나서 도망 다니기 일쑤. 겨우겨우 잡아와 한 놈씩 갈아입힌 후 침실에 입성하나 했더니 요 두 놈이 침대 위에서 다시 난리가 났다. 자라고 타이르다 타이르다 못해 몇 번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눕긴 누웠는데, 서로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자기 거라며 토닥이다가 뒤척이다가 자리싸움까지. 다시 몇 번의 분노 끝에, 아이들은 겨우 잠이 든다. 이렇게 재우고 나도 끝이 아니다. 저녁 먹은 그릇들도 씻어야 하고, 세탁기에 두 번째로 넣어놓은 빨래도 널어야 한다.


깨끗하고 정리된 집에서 광고처럼 기지개 켜고 일어나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데, 내일 아침 문을 열면 장난감으로 초토화된 거실이 “이게 현실이야” 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지





육아휴직 삼 년 차.

한순간도 심심하지 않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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