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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Nov 08. 2023

워킹맘이라는 것

모두가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



  모두가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다. 나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없었다.


  싱글 시절, 패셔니스타까지는 아니었으나 유행에 민감한 엄마 덕에 대충 그즈음의 패션은 맞추고 살았었다. 백이며, 구두며, 장신구며. 엄마는 딸의 무심함을 애써 감추고 싶었는지 그런 물건들을 사다 날랐었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고, 이제 내가 옷장에서 골라 입는 옷은 계절별 섹션에서 맨 앞에 자리한 딱 그 세벌. 세벌만 입는 워킹맘이 되었다. (물론 아주 가끔 업무적으로 중요한 자리의 경우, 격식을 차리기 위해 다른 옷을 꺼내기도 한다.) 한벌을 일주일 내내 입는 건 직장인으로서의 양심 상 좀 곤란하고, 매일 갈아입는 건 너무 힘드니 A-B-C-A-B 순으로. 어차피 빨래는 주말에 세탁기가 열심히 해주니 세벌로도 일주일은 문제없다.  






  코로나 덕분에 매주 월요일에 오셨다가 금요일 저녁에 가시던 엄마가 더 이상 오실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 사람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아니 구해봤자 뭐 하나. 낯을 엄청 가리고 분리 불안까지 있던 첫째는, 결국 한 달이 지나도록 함께 계셨던 이모님에게 가지 않았다. 육아는 나와 남편, 오롯이 두 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나와 남편은 요일에 따른 순번을 정했다. 일주일에 세 번은 내가. 두 번은 남편이. 동일 직종에 입사 동기임에도 결국 엄마인 나에게로 더 많은 몫이 돌아왔다. 엄마표 영어로 유명하신 새벽달님은 독박육아가 아니라 독점 육아로 오히려 혼자 하는 육아를 기껍게 하셨다는데, 나에게는 억울함만 남았다.



  우리에게는 주로 바쁜 요일과 일찍 오기 용이한 요일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금요일 같은 날이다. 차라리 주말에 다시 나올지언정, 대부분의 경우 금요일 야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요일을 정할 때도 결국 바쁜 날은 남편이 야근을, 조금 한가한 금요일 같은 경우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사회에 멋진 남편분들이 많겠지만, 우리 집만 보면 어느새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평하다는 말이 입 끝에 걸린다. 아니 너무 나갔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약속을 하면 뭐 하나. 회사에서 일은 빵빵 터지고, 남편에게서 오후 네시쯤 오늘은 중요한 보고가 있는데 어떻게 하냐는 문자가 온다. 어떻게 하긴. 나도 모르게 한숨도 같이 나온다. 오늘 야근하려고 그동안 미뤄둔 일들. 혹은 나에게도 저녁 늦게 잡힌 중요한 보고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비교 배틀을 해야 했다. 동종업계다 보니 대충 업무의 중요도가 서로 가늠이 되었지만, 막상 막하일 경우 니 일이 중요하네 내 일이 더 중요하네 비교배틀이 한바탕 펼쳐지곤 했다. 이제는 그런 옥신각신조차 힘들어 알았다고 해둔다. 아. 어서 빨리 더 달려야겠다.


  급하게 서둘러 중요한 사안을 마쳐두고 6:30 아이를 데리러 간다.


  7:00. 헐레벌덕 도착한 어린이집에 남은 아이는 우리 아이 딱 한 명.  백여 명이 넘는 대규모 어린이집이지만 남은 아이는 우리 아이 하나다. 다들 도대체 어떻게 그 시간 전에 데리고 가시는걸까.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담당 선생님은 아이가 울지 않고 잘 지냈다며, 나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설명하신다. 혼자 남았다는 그 말이 엄마에게 얼마나 아플지 선생님은 잘 알고 계시는 거겠지.


  아이는 결국 그날 밤 한밤중 깨어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린 줄 알았다고. 어린이집에 계속 남아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고. 아직 만 세 살인 아이에게 혼자만 남은 어린이집은 너무 크고 또 무서웠을게다.






  아이를 데리고 회사로 가서 무릎에 앉히고 타이핑을 시작한다. 아이는 자기도 타이핑을 하겠다면서 난리다. 아이 손에 키보드가 닿지 않게 최대한 엉덩이를 뒤로 빼고, 팔만 쑥 내밀어 보고서를 작성한다.

‘아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정신이 없다.


  보고다. 상사는 보고를 듣기 위해 우리 사무실에 오셨고, 아이는 내 뒤에 매달려 엄마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집중해야 한다. 마치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고를 마치고 지시를 듣고 나서야, 아이를 안아 올린다. 그 순간 아이의 존재를 인식할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는 없었다.



  매일이 외발 타기 자전거 위에 올라타, 두 손으로 덤블링을 하며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거 같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발이 삐끗해도, 손이 삐끗해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모든 걸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매 순간 매초 긴장해야 했고 이미 나는 너무 피곤했다. 머리부터 엉덩이 꼬리뼈까지 이어진 척추가 다 녹아내려 완전히 연체동물이 되어버린 내가, 바닥에 들러붙어 형체도 없어져버리는 거 같던 순간들이었다.





< 사진: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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