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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Nov 06. 2023

아이 둘 엄마의 퇴사 희망기

아주 거창한 꿈이 하나 있습니다

 

  선배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찰싹

  등짝에 맞닿은 손바닥이 시원하게 소리를 낸다. 그렇다. 나는 지금 선배에게 맞았다. 취업준비가 힘들다고 징징댈 때마다 선배는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 왜 취업을 준비하냐며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대학으로 오란다. 매번 칭찬인지, 격려인지, 꼬시는 것인지 모를 조언들이 건네지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선배에게 등짝을 맞았다. 네가 선택한 길이니 잔말 말고 열심히 하라는 아찔한 훈계였다. 이제 선배도 지쳤나 보다. 친구 역시 언제나 네가 최고라며 기계처럼 칭찬을 쏟아냈지만, 이번엔  매우 진지하게 웃음기 없는 얼굴로 차라리 다른 직업군을 알아보는 게 어떻냐 권했다. 친구의 성격이라면, 조언의 표피를 쓴 마음속 결론이었을 것이다. 하필 많고 많은 길 중 난 왜 이 직업군을 선택했을까. 울고 싶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내가 이 직업군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하나같이 "왜?"를 묻기 바빴다. 다들 이 직업군과 나는 전! 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나만, 나 하나만 '이 직업이 내 평생의 직업인데 왜 아무도 모르지'하고 답답해할 뿐이었다. 엄마 역시 그 회사원과 너는 안 어울린다며 차라리 사업을 하라고 말리셨었다. 아니 왜. 사업을 하면 잘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취업 준비생으로 지내던 시절, 운동복에 머리는 질끈 동여 메고 지내는 날 보며 엄마는 ‘위층 아주머니의 딸은 누구와 결혼했다더라’, ‘옆동 아주머니 딸은 어디에 취업했다더라’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창때 꾸미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는 딸을 꽤 안타까워했더랬다. 그래도 꿈꾸던 미래가 있었던 나는 그 당시 꽤 행복했던 거 같다.


  먼저 취업한 친구가 여의도에서 밥을 사겠다고 했던 저녁. 여의도 한복판을 쏟아져 나오는 하얗고 말끔한 셔츠차림의 회사원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었다. 남들이 개줄이라고 하든 말든, 나도 저렇게 신분증을 목에 차고 말끔하게 차려입고 다닐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당시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학교 취업반 시절 친한 고등학교 친구와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 A의 희망직군과 나의 희망직군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격이 달랐다. 우리의 사주를 열심히 들여다보시던 점쟁이 아주머니는 우리의 미래 직군을 정. 확. 히. 반대로 이야기하셨다. 당시 우리는 점쟁이 아주머니가 뭘 모르신다며 그저 웃고 넘겼는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점쟁이 아주머니가 말한 대로 각자의 희망직업과 딱 반대인 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 사주가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무의식에 반응하여 점쟁이 아주머니가 미래의 직업을 이야기해 주신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여러 시간들을 거쳐 나는 현재의 직업을 가졌고, 지금은 퇴사를 꿈꾼다. 그렇게 힘들게 버티며 준비해 놓고 퇴사를 꿈꾼다고? 남들보다 오래 준비했었기에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입 사원의 퇴사 러시를 지적하는 기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을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꿈꾸며 처음으로, 어쩌면 나에 대해서 남들이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직업군에서 십여 년을 있고 나서야, 나는 어쩌면 그 당시 그들이 옳았고 내가 틀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애를 낳고 나서, 나는 반년여만에 회사로 복귀했다. 업무 능력이 쳐지면 어떻게 하나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했다. 신입이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 일을 배우지 못하면 영영 배우지 못할 것만 같아서 복직의지가 대단했던 하루들이었다. 혹여 외국어 능력이 도움이 될까, 갓 백일이 지난 아기를 안고 언어교환을 한다면서 몇 있지도 않은 그 지역 외국인을 샅샅이 찾아 언어교류까지 했었더랬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고,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그 직장을 이제 나는 그만두고 싶다.




< 사진 출처: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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