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라면 할 말이 많지요.
내 꿈은 우주평화도 세계평화도 남북통일도 아니다. 그저 한 단어, 아니 한 글자로 이루어진 그것. “잠”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잠이 많기로 유명했던 아이였다. 당시에 "포켓몬“이 유행이었다면, 나의 별명은 잠많은 캐릭터인 ”잠만보“였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 책상 위에는 수업 중 숙면을 도와줄 도구(?)들이 잔뜩이었다. 자신의 수업 중 자는 학생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선생님의 심기를 위해, 나와 그들을 잘 보호해 줄 책무더기가 책상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그 뒤로 예쁘게 자리하던 나의 쿠션. 쿠션은 최대한 얇고 작아야 했다. 눈에 띄지 않게.
나의 잠에 대한 짝사랑이 공공연해진 이후에는 얇고 작은 쿠션의 크기가 점점 커졌던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잠을 많이 자긴 했지만, 항상 웃는 밝고 명랑한 성격 덕에 나는 선생님들에게 꽤나 사랑을 받았다. 그 덕에 맨 앞자리에 걸려도 태평히 잠을 잘 수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충격적일 정도로 너무 무례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넓은 아량으로 모르는 척해주신 덕에, 당시의 나는 꽤나 평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걸렸다. 몇 번 안 들어오셨던, 따라서 나와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었던 선생님. 야자 시간에 자다 걸렸는데, 모든 학생들 앞에서 저주를 퍼부으셨다. 잠 때문에 입시를 망칠 거라는 저주.
너처럼 맨날 처자는 애들이
잘되는 꼴을 못 봤다
사실 입시를 두 번이나 크게 망치긴 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교육열이 높지 않았던 부모님 덕에 나는 공부스트레스 없이 살아왔다. 내가 하겠다고 한 것만 하면 그뿐. 부모님은 나의 공부나 성적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12시 전에는 무조건 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셨다. 특히 잠이 부족한 걸 유난히 힘들어하는 나를 잘 아셨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거나 짜증을 내면 어서 들어가 낮잠이라도 자라고 재촉하시곤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저녁 9시도 안 되어 단짝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00아. 율이 지금 자는데?" 친구가 내일 중간고사라 물어볼 것이 있어 전화했단다. 고등학생 엄마로서의 양심에 걸리셨는지, 평소 잘 깨우시지 않던 엄마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를 깨우셨다. 다음날 친구는 중요한 시험 전날 그렇게 일찍 자는 게 어디 있냐, 너희 부모님은 네 시험기간을 모르시냐 신기해했고, 우리는 그저 한바탕 웃어젖혔다.
그런 내가 회사생활 중 제일 바쁘던 시기에는, 31일 한 달 평균 네 시간 수면으로 버텼다. 평균이 네 시간이었으니, 주말에 몰아자고 평일의 경우 두세시간으로 버틴 일정이었다. 어릴 적 어른들이 '회사 다닐 때처럼 공부했으면 전국 수석을 했겠다'는 말씀들을 하곤 하셨는데, 헛말이 아니다. 우선, 나라는 사람도 이렇게 살아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간절했던 취업준비생 시절에도, 늦잠 예방을 위한 아침 출석체크에서 벌금을 가장 많이 냈던 나였다. 엠티를 가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일찍 잠자리에 드는 멤버 중 한 명은 언제나 나였으니까. 그랬던 내가 열두 시에나 한 시에 들어가면 춤을 췄다. 너무 신이 나서!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부터 다리가 들썩였다. “우와. 열두 시야!!!!” 집에 가면 열두 시 반은 될 테고, 아이가 이미 자고 있을 테니 씻고, 핸드폰도 좀 하고 놀아도 두시가 안돼!!! 그게 그토록 행복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니 몸이 점점 피곤해졌다. 당시 기준 8시간의 수면의 나에게 있어 '신의 수면 시간'같은 거였는데, 8시간을 잤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토할 거 같아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팀장은 그런 나더러 웃으며 임신했냐고 물었다.
제가 지금 임신하면 성모 마리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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