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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Nov 09. 2023

직진 신호에 좌회전을.

병원에 다녀와도 될까요?



  오른팔엔 링거를 꽂고, 왼팔로는 휴지통을 부여잡으며 속을 게워내고, 어깨와 얼굴 사이엔 핸드폰을 끼워 업무 통화를 했다. 통화 중에 다시 속이 미식거릴까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서.






  평소 나를 아끼던 선배는 그날도 나를 보자마자 어디 아프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때마침 몸이 안 좋긴 했지만, 최근 들어 계속 피곤하고 힘든 날들이었기에 딱히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언제나 열두 시가 넘도록 야근을 하던 선배는 열두 시 즈음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며 후배들을 챙겼다. 우리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는 나를 보면,

“너 그러다 죽어. 빨리 퇴근해.”

라며 위로 겸,격려 겸, 걱정을 해주셨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럴 때마다 나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랴. 12 시인 지금도 내일 아침까지 마감인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아. 진짜. 어디엔가 그냥 파묻혀 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 아니다. 그러면 우리 애는 어쩌나. 결국 다시 정신 차리고 일을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 원동력의 최소 50%는 자녀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타자를 친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몸은 회사일정을 기억이라도 하는지 평일에는 아파도 견딜만했다. 그러다 주말이면 온갖 통증이 몰려와 죽을 거 같았다. 너무 힘들 때면, 일어나 눈떠보니 바닥인 경우도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오고 나선 기절했던 것이다. 기절했던 그날도 깨어나자마자 주말 출근을 했다. 내가 기절한 것보다 업무 마감이 더 무서웠다.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몸은 평일에도, 긴장도 최고인 업무시간에도 힘들어했다. 그런 나를 보며 선배는 “빨리 조퇴하고 병원이라도 다녀와.” 라며 나의 반차를 응원해 줬다. 그렇다. 나는 병원을 가기 위한 그 몇 시간도 말하지 못하는 쫄보다. 복직을 한 첫 해. 아이는 큰 어린이집으로 옮기고 나서, 분기별로 최소 일주일씩 입원을 했었다. 네 번의 입원 중 내가 아이를 찾아가 본 건 가장 마지막 입원뿐이었다. 아이가 입원해도 못 가보는데 내가 아픈 게 대수랴. 버틸 수만 있다면.


  며칠 동안만 지속될 것 같았던 미식거림이 계속된다. 저녁을 못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팀장은 전체 팀원들이 다 있는 데서 임신이냐며 물었다. 평소 과중한 업무를 내게 몰았던 팀장이기에, 이게 임신이면 나는 성모마리아라며 괜한 반항심을 던진다. 정신이 아득하다. 쫄보인 내가 미친 게 틀림없다.



 결국 몇 시간을 빼서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오기로 했다. 부러 팀장이 없는 날을 골랐다. 그 와중에도 쫄보 DNA는 변함이 없다. 단 몇 시간이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떠오른다. 제발 그 시간만이라도 연락이 안 왔으면. 결국. 연락은 왔고 나는 링거를 맞으며 속을 게워내다 말고 전화를 받는 중이다. 비참했다.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삶이라면 도대체 왜 사는 걸까. 전화를 끊고 몸의 고통과 비참함에 꺼억꺼억 올라오는 눈물을 허겁지겁 삼켜야 했다.




  회사 내에는 업무가 과중한 분들이 많았고 그들에 비하면 나는 세발의 피였다. 생색조차 낼 수 없었다. 업무가 과중한 분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라도 나서 내일 안 나올 수 있었으면”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지쳐있었고 힘들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퇴근길.

  이제 곧 집이다. 마지막으로 좌회전만 하면 우리 집이다. 초록불이다.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아차! 직진신호였었지. 다행히 너무 늦은 새벽이라 반대편 차선으로 오는 차는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차가 없는 새벽이기에, 오는 차가 있었다면 전속력이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 몸은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 사진 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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