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욕은 덤이지요
첫 보직을 받은 곳은 고객 항의가 많은 곳이었다. 전체 팀원 중 욕을 안 들어 본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임신 중 좋은 말만 듣고 지낸다면 좋겠지만, 직장생활 중에 어디 그게 마음처럼 되랴.
심한 말이 오기만 하고 가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요령 있는 선배 직원은 고객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해주기도 했다. 고객이 한 말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지 스스로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고객에게 욕을 하거나 지적을 할 수 없는 ‘직원’이니까.
지금 00놈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새대가리, 라고 하셨습니까?
포인트는 고객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나서, 고객이 했던 모욕적인 말과 “라고 하셨습니까?!” 사이에 잠시 정지를 두는 것이다. (주로 더 심한 말들이 오지만, 그러한 말들은 생략하기로 하자)
순간 사무실 사람들은 빵 터지고 말았다. 선배 직원의 익살스러움을 익히 알았기에, ‘약간의 대리만족과 속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 저렇게라도 풀고 살아야지.
내가 임신을 했던 그 시기도 한참 항의가 많은 기간이었다.
야 이 00 년아
너 같은 건 꺼지고 상사를 연결해 달라는 전화에 눈치를 본다. 아. 누구에게 전달해야 한단 말인가.
어디서 배운 머리통이야
옆팀의 직원은 임신 중에 험한 전화를 매일 들어야 하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괜찮았다.
사실 그동안 기억에도 마음에도 별로 큰 기억이 남지 않은 것을 보면 힘들긴 했어도 버틸만했었나 보다.
그래도 잊지 못할 고객이 있었으니, 높은 교육을 받은 사모님께서 아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전화를 주셨단다. 한껏 교양을 차린 목소리였으나 내용은 교양 있지 못했다.
너는 무슨 머리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니?
머리가 돌아가긴 하는 거니?
그 닭대가리 달고 너란 애도
취업 시험에 합격을 했니?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여자가 욕먹는 거야.
너 대학은 나왔니?
네 머리는 일하라고 달고 있는 거니?
하. 하. 생각지 못한 강한 인신공격의 연속에 정신이 아득하다. 삼십 분이 넘게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같은 여성끼리, 여성비하라는 거대한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다. 결국 나도 화로 응대하고 말았다.
팀장님은 나를 불러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냐며, 대수롭지 않은 위로를 건네셨다. 상사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시는 거다. 그렇다. 이런 일로 화를 내면 하루에도 수십 번을 화를 내며 살아야 한다.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려니 흘려보내라는데, 신입 시절에는 잘 안되었다. 아니 지금도 잘 안될 거 같다.
맞지 않는 것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상사에게든 고객에게든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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