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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Nov 24. 2023

무너지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무너지지 말아요.




친구가 물었다.

"너는 취업해서 뭐 하고 싶어?"

“응. 살아남고 싶어.”

“?”

친구는 꽤나 의아한 표정이었다. 오지랖 넓고, 친구 많기로 유명했던 내가 종횡무진 바쁜 날들을 보내며 합격한 직장에서 무언가 거창한 걸 이루고 싶다고 대답할 거라 예상했던 같다. 친구의 그 표정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고, 나는 친구의 그 표정이 꽤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았다.









취업만 하면 날개를 단 듯 날아다닐 거 같았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취업준비생'시절.

취업준비생이던 나 스스로 했던 이야기가 아닌, 주변인들이 하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믿고 있었나 보다.

취업만 하면 너는 날아다닐 거라는 그 이야기. 나에 관한 그 이야기.



주위의 기대와 달리 나의 직장생활은 무너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신입이기에 주어지는 잠깐의 사랑과 애정이 꽉 찬 허니문이 지나가고 나서는, 흩어지고 무너지는 날들이었다.

상사에게 깨지고, 선배들과는 충돌하고, 업무 파트너들은 신입인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거기에 여자라는 것도 꽤나 큰 역할을 했는데, 동료 직원들이 같은 남자 동기들에게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차피 기대도 없었다. 이미 취업 준비생 시절 과장 조금 보태면 경쟁과 배신과 음모의 판이었으니까.

같이 공부하던 스터디 멤버는, 내가 나만을 위해 책을 샀다며 서운하다 난리였다. 화가 난 요지는 자기를 위해 본인 책을 같이 안 사줬다는 것. 아니 내 돈 들여 내가 공부하려고 내 책을 산 것이 뭐 그리 죽을죄라고. 자료를 복사해서 자기한테 가져다 달라, 자료를 공유해 달라 등 후배는 중요한 취업 시험 전주까지 전화를 해서 각종 요청을 해댔고,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자 나보고 인간 같지 않은 동물이라며 각종 험한 말을 내뱉었다. “후배님 승입니다. “라고 말해줬다면, 그 아이의 기분은 풀렸을까.

당시에는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화가 나고, 내가 너 하나는 잊지 않고 산다고 다짐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분노조차 아까운 사람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자신의 두려움을 나에게 쏟아내며 그 시간을 버틴 것이었고, 그 두려움을 받아준 모질지 못하고 마음 약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경쟁자 한 명을 없애고 행복했을까.

지금도 가끔 드는 의문이다.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의 한장면.


드라마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서 꽤나 괜찮은 회사 오너로 등장하는 민홍주(권해효)가 한 말이다. 마음에 꽤 닿았는데, 오래오래 기억된다.


48살이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한 가지만은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일 수 있다.


비록 드라마상이지만, 회사의 오너가 된다면 저런 오너가 되고 싶다 느끼게 했던 그였다. 그런 그도 누군가에게는 개새끼라니.

그간의 시간을 한탄하고 하소연했지만, 결국은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였을 수 있다. 갑질을 해대고 모진 말을 해대는. 결국 세상은 돌고 돌아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모두 오고 가는 게 아니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러니 원망과 미움 대신, 그 자리에 나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 채워가기로 했다.

결론은 나나 잘하자.



취업준비생 시절 요즘말로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다)”할만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신입 시절 사막에 내팽개쳐진 돌덩이같이 의지할 데 하나 없이 실컷 뒹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회사생활은 어렵고 사회생활은 막막하다.



고참이 되면,

그래서 회사를 오~~~ 래다니면 없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기분. 무너지는 그 기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매일 같이 무너지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지지 않겠다 다짐한다.

비록 거창한 꿈과 포부는 없지만 오늘 하루에 지지 않겠다고.

결코,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오늘 하루도 힘들었을 그대.

그래도 우리, 무너지지는 말아요.

내일이 있잖아요.






main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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