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체외 충격파
10년 만에 치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은 날이었다.
우선 스케일링만 하고 진료 예약을 한 후,
치료비 견적 100만 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치과를 나왔다.
치아도 마음도 얼얼한 채,
치과 문을 열려고 팔을 든 순간이었다.
"어우... 씨... 내 팔!"
뭔가 '나의' 팔을 뜻하는 '내'를 빼면
큰 일 날 것 같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며칠 전부터 옆으로 누우면
오른쪽 팔이 찌르르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좀 불편해지더니,
무심코 팔을 뻗은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찔렀다.
이것 역시 무언의 계시였을까.
'합', 입을 다물고 앞을 보니
정형외과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계획에도 없던
정형외과로 홀린 듯이 들어갔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며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누가 치료를 미루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
약 한 시간 전 그런 사람이었던 나는,
갑자기 성숙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왜요? 제가 10년 만에 치과 진료받은
멋진 어른 같아 보이시나요?'
혼자 눈알을 번득이고 있는데,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네! 만세는 되는 데,
허수아비처럼 옆으로가 안 돼요."
의사 선생님은 잠시 인자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어디 지켜야 하는 논밭이라도 있니?
참새 싫어하니?'
왠지 눈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급히 팔을 뻗어 보이며 말했다.
"선생님, 팔을 이렇게, 이렇게 하면,
아.. 아! 아파요."
성숙한 성인답게 직관적인 설명이었다.
"그래요... 일단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봅시다.
그리고 정확히 보려면
초음파도 봐야 합니다."
나는 그저, 근육 염증약 처방 정도를
생각하고 왔었다.
10년 만에 치과를 방문한 용기를 낸 김에,
옆집 정형외과도 들른 것뿐인데...
이렇게 1일 2엑스레이의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새 나는 엑스레이실에서 나와
초음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의를 탈의한 채,
정체불명의 오프 숄더 쫄쫄이 상의 위로
팔을 내밀었다.
"여기 어깨 힘줄에 하얀 점들 보이시죠?
이게 다 석회입니다. 염증도 있네요.
회전근개증후군 소견이에요.
쉽게 말하면,
어깨 힘줄에 석회가 쌓여 염증이 생기고,
팔 움직임이 불편해지는 병입니다."
'회전... 무슨 개요..? 힘줄?'
주섬주섬 팔을 꿰어 옷을 입으며 생각했다.
스케일링한 이에 얼얼함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몰랐다.
이는 생각도 안 날 만큼
충격적인 치료가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은.
"자, 이 석회를 부셔야 해요.
체외 충격파 치료가 조금 아프긴 한데
효과는 좋아요. 그냥 방치하면
만성 근육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무섭고 생소한 설명을 듣고
체외 충격파 치료실로 안내되었다.
꿰었던 팔을 다시 빼내고
얌전히 옆으로 누웠다.
"환자분, 체외 충격파 치료 처음 하시는 거면
좀 아플 수 있어요.
그래도 10분 정도면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보세요."
원래 아픈 걸 잘 참는 성격이라,
마음을 다 잡았다.
"너무 아프시면 팔을 드세요."
물리치료사님이 내 팔을 단단히 제압하며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그럼 팔을 어떻게 들어요오오호?'
"흐으으윽!"
짧은 의문은 신음과 함께
3초 만에 날아갔다.
과연 이름에 걸맞게 충격적인 고통이었다.
아픈 팔을 쾅! 내리쳐서 피멍이 들었는데,
그 피멍 든 부위를 집중적으로
묵직하게 꽝꽝 계속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잘 참으시네요.
강도를 조금만 더 올리겠습니다."
'아니요. 선생님.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아하으윽'
마음속의 외침 역시 멀리 날아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뭍으로 끌려 나온 생선처럼
앞뒤로 파닥거렸다.
고백건대, 그곳이 고문실이었다면
나는 바로 술술 다 불었을 것이다.
"크윽, 범인은 옆집 치과의사 선생님입니다.
그가 다 시켰습니다아아악."
놀랍게도,
너무 서럽게 아파서 눈물까지 찔끔 났다.
"금방 끝났지요?
이제 온열치료만 하고 가시면 됩니다.
보통 5번 정도 더 하면 될 거예요.
평소에 틈틈이 가벼운 스트레칭 꼭 해주세요.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서러운 눈물을 들킬세라
얼른 온열치료실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여러 고통을 경험한 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향했다.
치과 의자에 누워서 했던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찾아본 회전근개증후군이라는 질병은,
생각보다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
외부의 충격, 퇴행성 변화, 운동과 같이 어깨의 과사용 등이 원인이다.
"넘어질 때 팔로 짚거나, 충격받은 일 있나요?"
"아니요."
"오른쪽 팔이나 어깨 많이 쓰시나요?"
"왼손잡이입니다."
"..."
대화를 복기하여 가능성을 소거해 보니,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만 남았다.
유감스럽게도 앞으로도
소거하기 힘든 사항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아플 때마다 지나치지 않고 치료받기.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하기.
유연하게 노화를 받아들이고,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갈 방법을 점검해 본다.
신기하게도,
체외 충격파 치료는 효과가 좋았다.
잠깐의 고통 끝에 허수아비 자세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또 감사하게도,
실비보험이 적용되어 만 원 정도에
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공범이 되어주신
옆집 치과 의사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으쓱으쓱'
풍요로운 노년의 논밭을 위하여
스트레칭을 틈틈이 하는 습관이 생겼다.
"참새 비켜!"
생각난 김에 스트레칭을 또 해야겠다.
바로 여기서,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