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대로 먹어
1. 거짓말한 자와 속은 자
"엄마! 두희가 거짓말했어요!"
우리 집 쌍둥이 세희가 안방에 뛰어 들어왔다.
"엄마! 세희가 속았어요!"
곧, 두희도 들어와 외쳤다.
서로 잘못이라는 듯, 자못 기세가 등등하다.
빨래를 들고 있던 나는 발끝으로 둘 다 궁둥이를 통통 찼다.
"서로 화해하자."
어린이방 옷장에 옷을 넣으려는데 둘이 졸졸 따라왔다.
"두희가 엄마는 김밥 못 싼데요."
"아니야! 엄마는은, 그때 우리가 머그는 그런 김밥만 못 싼다고 했어."
소란에 첫째 원희가 방에서 나왔다.
"그런 김밥은 아무나 못 싸. 가게에서 사 먹거나, 음식을 잘해야 해."
어째, 들을수록 더 엄마 흉을 보는 것 같았다.
결국 원희까지 발로 팡팡 차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이 꺄르륵 웃으며 도망갔다.
2. 아무 김밥 정식
늦잠을 자고 싶은 주말 아침. 우리 집 아침 메뉴는 주로 김밥이다.
우리 식구끼리 주먹밥이라 부르는 그 메뉴는,
사실 김과 밥을 그냥 동시에 먹는 한 끼다.
냉장고에 있던 아무 반찬을 꺼내 아이들이 먹기 좋게 자른다.
따끈한 밥에 참기름, 가끔 덜 졸린 날은 통깨.
비닐장갑을 끼고 쓱쓱 뭉쳐서 도시락 김에 도르륵 싸면 짠, 주먹밥 완성이다.
세트는 알록달록 과일이다. 역시 냉장고 속, 아무 과일이나 소환된다.
비주얼 담당이므로 최대한 화려하게 세팅한다.
이번 주는 우엉 어묵볶음 주먹밥에 골든키위 방울토마토 정식이었다.
온갖 재료가 화려하게 들어간 김밥에 비할 바는 못된다.
그래도 엄마의 주말 늦잠과 바꾼 우리 집 김밥을 아이들은 고맙게도 잘 먹어주었다.
분명, 몇 주전까지는 그랬다.
3. 붕어빵에는 날개가 있다
지금 쌍둥이들 담임 선생님은 원희부터 6년째 우리 세 아이들을 맡아주고 계신다.
아니, 엄마인 나까지 포함해서 돌봐주고 계신 듯하다.
쌍둥이 임신 후 출산일이 다가오던 몇 년 전 12월, 선생님께 문자가 왔었다.
'어머니, 한참 힘드시지요? 길 지나다 보이길래 샀습니다. 따뜻할 때 원희랑 드세요.'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보니 손잡이에 솜씨 좋게 꽁꽁 묶여있는 비닐봉지.
그 속, 갈색 봉투에 안에는 아직도 따끈따끈한 붕어빵이 가득 들어있었다.
집에서도, 배달로도 먹기 힘든 그 빵은 가장 추웠던 그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이 건네신 말없는 위로의 형태였다.
달콤하고 구수한 팥맛 속에 그날 깨달았다.
어떤 천사는 하늘에서 오지 않고,
붕어빵을 들고 현관 앞에 다녀간다는 걸.
4. 한 줄의 기적
그 붕어빵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언니와 같은 어린이 집에 다니게 되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 출퇴근 시간에 맞춰 매번 1등이다.
아침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 간단한 고구마, 빵, 과일을 싸서 들려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선생님이 어린이집에서 김밥을 싸주셨다.
단무지, 햄, 계란, 우엉, 시금치... 사진 속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김밥이 보였다.
'온갖 재료가 화려하게 들어간' 김밥을 먹어 본 쌍둥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선생님은 여전히 한 번씩 나를 울게 하신다.
기적은 이렇게 따뜻한 붕어빵의 온기로, 알록달록 아침 김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선생님의 말없는 날갯짓으로 우리 식구는 오늘도 든든한 온기를 얻는다.
5. 어설프니까 김밥이다
"엄마도 한번 그런 김밥 싸볼까?"
두희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엄마가 하지 마세요."
"맞아요. 아빠 시키세요." 세희도 말렸다.
"엄마, 우리는 주는 대로 잘 먹어요." 평소에 늘 하는 말을 원희는 어느새 따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집 어린이들은 잘 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마음 깊이 인사를 드려본다.
아무 재료나 둘둘 말아도 맛있는 김밥처럼,
우리 가족도 어설퍼도 정답게, 한 김 안에서 둘둘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재료는 조금씩 달라도, 손끝이 서툴러도
그래도 끝까지 함께 말아가는, 우리 가족입니다.
부디, 선생님의 따뜻한 날갯짓을
우리 아이들도, 저도 주변에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울퉁불퉁 김밥과 함께,
돌돌 제 희망도 같이 말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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