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선화 삶 01화

1화 진아 할머니

by 단려

아침부터 읍내 내과에는 할머니들로 북적인다.

간호사는 공책에 들어온 순서대로 이름을 쓰라고 했다. 글을 모르는 진아 할머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진아 할머니는 이름을 쓸 줄 모른다. 오전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간호사들이 오는 순서대로 이름을 적게 했다. 올해 연세가 88세이지만 아직도 일을 한다. 시골 아낙들은 나이 상관없이 자리에 눕지 않으면 밭일이나 노인일자리에서 약간의 용돈이라도 벌어 쓴다. 일이 없는 날 오전에는 읍내 의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는다.

얼마 전부터 진아 할머니는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경로당에서 한글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이 나이에 무슨 한글....”

“한평생 한글 몰라도 살았는데 저승길 앞두고 뭔 한글...”

경로당 어르신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목소리가 크고 껄쩍지근한 진아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인다.

“내 손으로 이름 쓰면 안 되나? 병원 가서 내 이름 쓰겠다는데 와... 뭐가 잘못됐나?”

진아 할머니의 목청에 한 마디씩 했던 회원들이 돌아앉아 눈을 흘긴다.

그렇게 한글 수업이 열리게 되었다.

방바닥에 밥상을 쭉 깔고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다.

더 놀란 것은 이 동네에는 연세가 80이 넘으신 어르신이 대다수였다. 한글을 접해 본 어르신들이 몇 분 안 됐다. 연필을 잡아 본 적도 없다고 했다. 한글수업보다 어르신들에게 색연필을 나눠드리고 색칠을 했다. 예쁜 그림이 나왔다. 그림을 보며 한 마디씩 건넨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뿌듯한지 서로의 그림을 비교한다.

그림의 한 구석에는 그분들의 애환과 응어리가 보인다.

“아이고~ 늘그막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더만... ”

“진주 댁 색이 아주 곱구먼, 내는 색을 잘못 칠 했는 거라.”

옆집 아낙의 그림을 칭찬하고 늦으막에 그린 그림에 감탄한 느낌을 서로 전한다.

드디어 오늘은 그들에게 연필을 주고 자기 이름을 쓰는 날이다.

기다리던 자신의 이름을 쓰는 날에 눈빛들이 초롱한 모습을 보았다.

글자를 그리신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의 획이 다르다.

선생님이 써 준 글자를 대충 흉내는 냈다. 밤새 연습을 해 공책을 가득 메운 진아 할머니는 자랑스러운 듯 공책을 내민다. 받침은 없고 “ㅇ”은 구멍이 나 있다. 동그라미가 매듭이 없다. 획은 삐뚤빼뚤 거리지만 힘 있게 쓰려는 흔적이 보인다.

남이 써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썼다. 공책을 멀찍이 두고 이름을 감상한다.

진아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하고 부쩍 바빠졌다.

시골 할머니들은 이른 아침이면 읍내 내과로 모인다. 반장을 해 보지 못한 진아 할머니는 읍내 의원에서 간호사 대신 대기이름 적는 공책을 들고 다닌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평소 반장 완장이 차고 싶었나 보다.

“부산댁~ 여기 이름 써. 이름을 써야지.”

“아.. 아! 내 이름 못쓴다. 쪼기 간호사한테 부탁해야 돼.”

부산댁 할머니는 빈자리가 있는지 살피며 이야기를 건넨다.

“니 이름도 못쓰면 우짜노~”

“아이고 그라믄 진아 할미가 써 보든가..”

“내가?”

진아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 부산댁 할머니를 쳐다본다.

“뭐라 적으꼬?” “김옥부이라 적어.”

부산댁 할머니 이름은 ‘김옥분’이다.

“김....오...부...이...”

진아 할머니가 공책에 적은 이름은 ‘김오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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