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선화 삶 02화

2화 통구이 한글

by 단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일찍들 오셨네요. "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가 그들과 나누는 첫인사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칠판 한 귀퉁이에 적힌 빼곡한 낱말들. 가늘고 떨리는 글씨체의 깨알 같은 글자가 적혀있다.

‘가족, 반지, 듣다, 마음, 김밥...’ 그녀가 쓴 지워지지 않은 낱말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다 돌아 간 교실에서 그녀가 공부하고 간 흔적이다. 그날 이후 그녀는 우리 수업을 같이 할 수 없었다. 수업을 끝난 주말에 그녀는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반 최고령인 그녀는 늘 남들이 돌아간 교실에 혼자 남아 공부를 했다.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싶어 글자를 적다 갔다. 아무리 한글 자음과 모음을 합쳐 읽어도 글을 읽지 못했다. 그녀의 진도를 맞추느라 다른 학습자는 기다리는 망부석이 된다. 한편에서는 짜증이 묻어나는 한숨도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한동안 그녀가 칠판에 쓴 글은 지우지 않고 쓰여 있었다.

그녀의 집은 시내에서 떨어진 시골에 있다. 그녀가 집을 가려면 터미널에서 그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녀는 버스가 오는 시간을 잘 모른다.

그래서 차표를 끊어 버스가 서는 자리에서 무작정 앉아 기다린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가방 속에 공책을 꺼낸다. 연필을 들고 내가 적어 준 글자를 따라 쓴다. 나는 매일 그녀의 공책에 낱말을 적어 따라 쓸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무작정 기다리는 시외버스를 글자를 쓰며 시간을 태운다.

옆에 누가 다가온다. 그녀가 쓰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헤! 뭘 보는 겨?” 그녀가 부끄러운 듯 말을 건넸다.

“어르신.. 한글 배우십니까?” 아들 뻘 되는 중년 남자가 말했다.

“잘 안되네. 글자는 이제 쓰겠는데 무슨 글인지 아직 몰라.”

“아휴 대단하십니다.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십니까?” 중년 남자가 물었다.

“올해 89세입니다” 글자를 쓰면서 그녀가 대답했다.

중년 남자의 어머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정도의 연세라며 중년 남자는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리고 그녀가 쓰는 글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사람이 조금씩 모인다. 곧 버스가 올 때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쓰는 공책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시간이 나면 그녀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 선생님은 내 딸이다. 내 딸보다 나를 더 생각해 줘서 고맙데이~.”

딸들이 시집을 가서 서울에서 살고 창원에도 살고 있다고 한다. 딸도 곁을 떠나 멀리 있으니 남 같다고 하신다.

나이가 많아도 아직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고 했다. 요즘은 한글을 배워 심심하지가 않다고 했다. 매일 만나는 나는 딸보다 가깝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 둘이 있을 때는 “엄마~”라고 불러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고 그녀는 딸 같은 내가 힘들까 봐 열심히 공부했다.

낱말을 읽다 이제는 짧은 문장이 나왔다.

“ 이 서랍인가 저 서랍인가

여름옷 겨울 옷

봄가을 옷...”

발음이 돌지 않아 글을 읽지 못하고 혀가 꼬였다.

“내가 죽기 전에 여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의 소원이다.

“엄마~ 콩나물에 물을 주니까 언제 컸냐는 듯 커 있는 거 보셨죠? 한글도 그래요.”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글을 같이 읽었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아 그날 배우는 페이지를 닭을 통째로 튀기듯 외웠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던 보람으로 하루가 다르게 봇물이 터졌다. 그녀는 조금씩 아는 글자가 생겼다. 아직 내세울 정도는 아니라 속으로 글자를 읽고 있다고 했다. 한글 교실에 오면 쪼그라든 자존감이 활짝 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그 한마디는 반 전체에 큰 힘을 주었고 우리는 서로를 부축이며 응원을 했다.

“엄마 저 왔어요.” 그녀가 잠들어 있는 현충원을 갔다. 그녀는 대전 현충원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책상에서 공책을 발견했다. 받침도 빠져 있었지만 그녀가 나에게 쓴 글이다

‘선새니 고마슴니다.’

그녀는 낱자 익히기가 힘들어 글자를 통구이 해서 익혔지만 수십 번을 곱씹으며 글자를 읽었다. 그녀는 글자를 쓸 때 받침은 거의 빠져있다. 글자를 안다기보다는 그림처럼 형상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 그림처럼 보인 글자가 비슷한 글자를 찾을 때쯤이면 글자가 맞는지 묻기도 했다.

“이거 ‘가지’ 할 때 ‘가’ 맞나?” 읽히지 않아도 틀려도 그녀의 방법으로 글자를 터득해 갔다.

나는 가끔 그녀를 생각한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글을 공부하시던 그분은 지금도 한글을 깨치고 계실 것 같다.

문해교육에 오시는 어르신 중 연세가 고령이 분들이 많다. 가끔은 그녀처럼 따뜻한 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다 떠난 자리가 슬픈 메아리가 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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