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라 Oct 07. 2021

취미가 일이 된 나는 '성덕'일까?

서른이라 좋겠다 #3



고질병을 앓고 있다. 월요병.





나는 대학생때부터 월요병이 있었다. "맨날 놀면서 출근할 데도 없는 애가 무슨 월요병이야?" 싶겠지만, 나에게 월요일은 곧 야구 없는 날이었다. 이게 얼마나 절망적인지 아시는지.


야구는 보통 3월말쯤부터 11월초까지,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진행된다. 야구경기가 없는 월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금단현상에 시달린다. 아 정말 오늘 야구가 없단 말인가. 그럼 나의 저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바보가 된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중요 일정은 가급적 월요일로 잡는다. 그래야 야구 생각 안하고 하루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다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가을이 오면, 열정도가 피크를 찍는다. 우리팀 남의팀 상관없이 닥치는대로 야구를 보는데 미친 사람같다. 그렇게 짧고 굵은 가을을 보내고 나면, 차디찬 겨울 끝내 나락으로 빠진다.

차라리 겨울잠을 자는게 나을까 싶었다. 나는 가장 싫어하는 계절도 겨울이었다. 야구가 없으니까.







야구판에 여자가 어딨어


아무리 야구를 좋아한다고 해도 야구가 내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름다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야구장에 내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주 행복했으니까.


사실 아주 꿈을 안 꿔본 것은 아니다. 대학생 때 대외활동도 야구 관련된 것만 골라 하다보니 야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고 부러웠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야구계에서 여자는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이건 10년 전 이야기. 지금은 여직원이 꽤 많이 있다)


"여자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어, 기껏해야 밥 챙겨주고 돈 계산하는 거 정도?"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나에게 악의가 있지는 않았다. 정말 현실이 그랬으니까.





마침내 성덕,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여기 있다. 취업사이트에서 발견한 취업공고를 보고 딱 '이건 내 자리잖아' 라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었다. 자소서도 술술 써졌고 면접도 떨리지 않았다.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진심은 통할 것이라고 믿으며.


합격자발표 날..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앞으로 남은 내 영혼을 다 갈아넣고 이 한 몸 회사에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매일 야구를 볼 수 있다.

저녁에도 야구를 보고, 낮에도 야구를 본다.

돈 벌면서 야구를 본다. 야구를 보는데 돈이 들어온다.

가을야구 피케팅을 하지 않아도 나는 현장에 간다.

이 얼마나 마법같은지. 아니, 마법같아 보였는지.



그런데 월요병은 여전했다. 이유가 바뀌었다. 보통의 직장인 월요병이다. 회사 너무 가기 힘들어.


일은 일이었다. 야구를 보며 근무를 하는데 정신없이 바쁘다보니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분명 경기장에 갔지만 그라운드를 본 기억은 없다. 누가 이겼더라?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야구 스코어를 확인한다.






잃어버린 취미생활


일하는 게 힘들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걸 가지고 일을 해도 힘들지? 그럼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맞는 말이다. 야구를 가지고 일을 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정말 하나도 모르는 금융, IT 이런게 내 일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지 더 끔찍하기는 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괴로운건 취미생활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야구를 보면서 다 날려버리곤 했는데, 야구로 받은 스트레스는 어디다 풀어야 하지?


지하철을 타면 제일 이해 안 되는 사람이 폰으로 야구중계 보고 있는 사람. 저걸 왜 볼까. 옆 시야로 살짝 보이는 것도 싫어서 자리를 옮긴 적도 있다. 집에 가면 스포츠 채널 절대 안 본다. 오히려 축구를 보면 봤지 야구 프로그램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육아휴직 기간에도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야구 절대 안 봤다. 평소 같았으면 태교엔 야구지! 하며 신나게 봤을 텐데. 이러다 우리 애는 야구에 'ㅇ'도 모르게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입사 6년차, 아직도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소소하게 재미난 것들은 있을 수 있겠으나 야구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화끈한 무엇, 그것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야구 전문가가 되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내가 '야구 좀 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내가 야구 좋아한 건 좋아한 것도 아니고 알고 있는 걸 가지고 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무한한 야구의 세계. 너무너무 깊다.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성덕은 행복하다


"취미생활이 직업이 되면 어때?"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아직 명확한 정답은 모르겠다. 취미생활은 사라졌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야구가 꼭 세상에 필요한지, 야구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와닿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에 자부심, 자신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한 때 내가 온 마음 바쳐 사랑했던 대상이 나와 꽤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깟 공놀이가 뭐라고 이렇게 쩔쩔 매고있나 싶을 때도 있다. 깊이 파면 팔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야구가 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설레고, 그라운드를 마주하면 두근거리고, 공 하나에 울고 웃는다.


그런걸 보면 나는 여전히 야구 팬이고, 나는 성공한 덕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사표를 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