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게 진짜 자신감이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쉰다고 나아지지 않고 어떻게든 자극을 줘야 합니다. 이때 가장 도움이 된 방법이 있었으니, 핸드폰을 들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을 찾아서 약속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컨설팅할 때 동기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제가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 중 하나였고, 일과 삶의 밸런스도 좋았던 친구입니다. (게다가 세상 불공평하게 머리숱도 많아요) 지금은 60억 달러, 8조 원 넘는 밸류를 받고 있는 어플라이드 인튜이션이라는 곳의 한국 대표입니다. 이 친구와 치맥을 하며 일 얘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 일하는 건 자신감인데,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게 진짜 자신감인 거 같아.
사실 일이 아무 문제 없이 잘 풀리는 건 굉장히 어색한 일입니다. 오늘 기분이 좋더라도 반드시 언젠간 안 좋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장애물을 마주치게 되죠. 그래서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더라도 덜 아프게 넘어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이 동기 대표도, 매일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일을 다시 시작하니 마치 늪에서 나온 것처럼, 예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쳐있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슬럼프 상태는 내가 쉬기 위해 스스로 정의한 상태 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때마침 도움을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HB아뜰리에라는 곳을 샘플실 겸 패턴실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SNS에서 교류를 하다 기회가 되어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공장 관리자 경험도 있으셔서 대량 생산에 대한 경험도 있으신 분이셨죠.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봉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건 사셔야 해요
가장 도움이 되었던 조언이 있었습니다.
장사를 시작할 때, 현금흐름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무분별한 투자를 하게 되면 망하게 되겠죠. 하지만 지나치게 투자를 아끼게 된다면 그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전 성격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그리고 스타트업에서의 경험 때문에 투자에 지나치게 인색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추가적으로 기계를 구매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었죠.
하지만 장사는 지속적인 용기를 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용기가 부족한 시점에서는 누군가는 트리거가 되어줘야 합니다. 전 그때 "그건 사셔야 해요"라는 한마디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사용하시던 오버로크 기계를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이 1차적으로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원단도 해결 방안을 찾았습니다. 퀄리티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코듀로이 원단은 내년을 기약하기로 하고, 컨트롤이 가능한 원단 중 퀄리티가 좋은 것을 찾아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구매한 기계까지 적용한 제작 방법과 새로운 원단으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죠.
챌린지에 실패하면 다녀오겠다고 했던 쿠팡맨을 다녀왔습니다. 6시간을 정말 열심히 일 하니 6만 5천 원 정도의 급여가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란?
3년 전 즈음 컨설팅을 하던 시절, 고객사에서 프로젝트에서 저를 쓰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 한 달에 3,500만 원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보통 이를 맨먼스(Man/Month)라고 합니다). 금액이 노골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인지, 동료들과 일을 하다 짬을 내서 얘기를 할 때면 "오늘 100만 원 이상의 가치를 고객에게 줬어?"라며 서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니 실소가 나오네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치를 이야기할 때 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하는 가치가 내 연봉으로 환산되어 매달 급여통장에 입금됩니다. 즉 내 연봉이 내가 세상에 기여하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40살, 한창 몸값을 높여 일할 나이에 6시간을 일하고 6만 5천 원의 가치를 받는다는 건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도전적인 일입니다. 회사가 아닌 내 일을 한다는 건 더 그렇습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하는 가치가 0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흔들리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숫자 뒤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아직도 언제나, 이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챌린징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품 제작을 위한 출구가 보이는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이것을 해결하기 전엔 홈페이지의 제작과 같은 부수적인 일의 시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브랜드의 사명(목적)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