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울레리-고라파니
셋째 날
울레리-고라파니 거리 7.5km 7시간 30분 20,579걸음
잘 먹어야 잘 걷는다!
아침 햇살이 좋은 날! 롯지 마당에서 트래커들이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을 든든히 먹으려 달밧을 시켰다. 달밧은 우리의 백반 같은 것으로 밥과 반찬이 나오고 카레와 국도 있다. 음식을 추가해도 돈을 더 받지 않고 집집이 다른 차림이란다.
김과 함께 먹는 달밧은 의외로 맛있다. 롯지 음식은 대부분 서양식과 네팔식이다. 스파게티를 주로 토스트, 오믈렛, 달밧, 마늘스프, 달걀요리 , 라면 등이고 마실 것은 커피와 밀크티를 기본으로 콜라까지 있다. 한국인 트래커를 위한 라면이나 한국요리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여행 즐거움 중 하나가 음식인데 입에 맞지 않으면 중요한 즐거움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리라.
아침을 먹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짐을 정리하고 배낭을 다시 꾸리는 일이다. 가이드 배낭과 내 배낭으로 짐을 나눠 하나하나 차곡차곡 배낭에 담고 최대한 부피를 줄인다.
맨 아래에는 침낭이나 다운파카 등 부피가 크고 가벼운 것, 중간 위 등쪽에는 작지막 무거운 것들로 채우고 나머지 짐을 싸고 뚜껑에는 간식이나 바로 필요한 물건을 옆면에는 물통 등을 넣으면 무게중심이 허리위 어깨에 있어 좋다. 배낭을 멜 때는 허리벨트를 잘 메서 무게를 어깨와 허리로 분산하면 더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짐을 싸는 이 일은 트래킹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며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굳어진다.
아침을 먹은 트래커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 롯지를 떠나 오늘의 목적지 고라파니로 향한다. 정말 좋은 가을 하늘 아래로 향하기 위해 배낭을 확인하고 물병 채우고 아침 햇볕에 말려놓은 등산화를 찾아 신고 출발 채비를 한다. 등산화를 본 롯지 사장이 엄지를 치켜 올리며 웃는다. 내가 길에 비해 조금 오버스펙의 등산화를 가져온 것 같긴 하다.
걷기의 시작!
등산화를 신을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오늘은 산을 오르는 길이기에 전체적으로 약간 느슨하게 묶고 발목 쪽에 손가락 두 개 정도의 여유를 줘서 계단을 오르거나 할 때 발목이 편하게 묶어 준다.
하산할 때는 끈을 모두 단단히 조여 발이 신발 안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엄지발가락이 앞굽에 닫지 않아야 편하고 안전하다. 지금 신은 등산화는 두 달 전에 산 풀그레인 가죽 중등산화라서 몇 번 신지 않아 발에 익지 않아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춰 최적의 상태를 찾느라 끈을 고쳐 매는 수고를 몇 번 한다.
개인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등산화를 살 때는 용도를 먼저 정해야 한다.
가벼운 산행 위주라면 발목이 짧은 경등산화가 편하고 적응하기도 좋다. 하지만 하루 이상의 거리를 걷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조금 더 무겁더라도 발목까지 올라와 발목관절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고 바닥이 딱딱해서 땅의 충격을 좀 더 완충시킬 수 있어야 좋은 등산화이다.
크기는 운동화보다 한 치수 정도 큰 걸 사서 등산 시 발이 부어도 넉넉하게 신을 수 있도록 하고 깔창을 한 개 더 깔거나, 쿠션이 좋은 깔창으로 바꿔 무릎관절에 부담을 덜어 주는 것도 좋다. 그리고 쿠션이 좋은 두꺼운 양모 양말을 신어 발 전체가 신발에 부드럽게 꽉 찬 느낌으로 신는다면 더욱 편하다.
특히 발볼과 발등 높이를 고려하여 전체적 크기와 착화감을 느껴보고 발에 잘 맞는 것을 사서 여러 번 신어 길들이며 신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이번 트래킹에는 머렐의 월더니스 중등산화를 신었다. 산을 걸으며 살펴보니 네팔사람들은 30Kg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도 슬리퍼나 운동화로도 빠르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는 것을 보면 역시 현지 적응이 최고인 것 같다. 또 그 모습을 보니 이 사람들의 노고가 더욱 수고롭게 느껴진다.
고라파니를 향해서
안녕 울레리!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옆집의 아침밥 짓는 하얀 연기가 가라앉을 때쯤 고라파니로 향한다.
골목길을 따라 학교 옆을 걸어 아침 당나귀들 먼저 걸어간 길을 걷는다. 가벼운 발걸음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돌계단 길이다. 당나귀 배설물로 가득한 곳에서는 발 디딜 틈을 찾아 몇 번씩 걷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안나푸르나에서 길을 잃으면 당나귀 똥을 따라 걸어라!
한참을 걷다 보니 반단티이다. 쉼터가 있고 건너에는 좌판을 연 작은 상점이다. 사과와 몇 가지 물품들이 놓여있고 마당에는 멋진 푸른 나무가 있다. 잎이 동백나무 비슷해서 물었더니 랄리구라스란다. 네팔의 국화인데 여름에 피는 꽃이어서 지금은 볼 수 없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사진을 한 장 가져와 보여준다. 큰 나무를 가득 채우며 핀 빨갛고 화려한 꽃나무였다. 여름에 여행 온다면 이 장관을 볼 수 있겠다.
고마움에 사과를 사 먹는다. 노란색으로 얼핏 보면 배처럼 보인다. 껍질을 깎아서 가이드에게 건네니 깎지 말고 껍질째 먹는 게 좋단다. 여기는 농약도 하지 않고 자연에서 재배하고 또한 양도 많아지니 그게 낫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앞을 지나는 작은 길을 가로질러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새끼줄이 걸려있다. 몇 종류 야생화와 풀이 달려 금줄처럼 드리워져 있어 가이드에게 물으니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란다. 우리 풍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나 농사를 짓는 곳은 자연을 숭배한다.
잠시 쉬고 다시 고라파니를 향해 걷는다.
한 계단 두 계단 돌계단 지나 한참을 걷다 보면 트래커들이 무리를 지어 쉬고 있는 쉼터가 있다. 쉼터의 모양새가 조금 특이한데 돌을 잘 쌓아서 계단처럼 만들었다. 그 높이가 마침 배낭을 내려놓기 좋은 허리춤 높이인데 짐을 지고 엉덩이를 기대거나 배낭을 내려놓고 쉰다. 다시 출발할 때는 힘들이지 않고 짐을 멜 수 있어 편리하다. 네팔 사람들의 오랜 지혜와 배려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쉬다 걷기를 반복하며 산을 느끼고, 하늘을 보고, 땅을 딛고 생각하며 몇 시간을 걷다 보니 저만치 언덕마을이 보이고 입구에는 노란색 작은 개선문이 서 있다. WELCOME TO GHPREPANI, POONHILL 그리고 기둥에는 NAMASTE가 쓰여 있다.
고라파니! 히말라야 앞에 서다.
여기서 퍼밋와 팀스를 다시 확인받고 위쪽 고라파니로 향한다. 내일 푼힐 전망대를 오르기 편하게 좀 더 높은 곳에서 머물기 위해서다. 윗고라파니에 도착하니 트래커들이 하나, 둘씩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각자가 정한 롯지로 향한다.
정해 논 롯지가 없기에 상점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조망이 잘 보이고 시설이 좋은 롯지를 찾아본다. 몇 군데를 돌아보고 푼힐로 오르는 언덕에 있는 슈퍼 뷰 롯지로 결정한다. 히말라야 전경이 잘 보이고 시설이 깨끗해서 마음에 든다. 물론 가격은 다른 롯지에 비해 비싸지만 뷰만은 롯지 이름처럼 슈퍼다. 방에서 짐을 풀고 커텐을 걷자 히말라야 연봉이 눈에 바로 들어온다.
한잔이 생각나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네팔 맥주 고르카를 마시는데 취기가 바로 올라온다. 역시 산에서는 어느 술보다 맥주의 청량함이 어울린다. 더 기분이 좋아져서 연거푸 몇 잔을 마시며 히말라야 연봉이 석양에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붉게 타오는 히말라야의 산마루가 내 앞에 펼쳐질 땐 전율에 밀려온다. 석양도 붉고 히말라야도 붉고 내 얼굴도 붉다. 이 느낌과 광경에 취해서 아무 말 없이 산만 보았다.
산이라서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땅거미가 질 무렵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트래커가 가이드와 함께 올라온다. 어젯밤 같은 롯지에서 함께 저녁 먹으며 친해진 이다. 지금은 두바이에서 직장 다니고 있고 5일 여정으로 푼힐만 보러 왔다고 한다. 전망대로 별 보러 같이 가잔다. 여기서 편히 보겠다고 말하고 내려오면 맥주 한잔하자고 했다.
가이드가 롯지에서 나오더니 작은 파란색 병을 보여준다. 자기가 즐겨 마시는 보드카라며 권한다. 한잔 받았는데 보드카치고는 역한 냄새가 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벨라루스에서 온 청년이 지나간다. 그도 어젯밤 같은 롯지에서 알게 된 트래커이다. 보드카를 권하니 좋다며 옆에 털썩 앉는다. 생김새가 꼭 서양의 요정 같다. 비취색 눈동자에 하얀 피부 큰 키에 귀를 덮는 털모자를 썼는데 그 모습이 동화책에서 보던 요정을 꼭 닮았다.
서로 웃으며 술을 마시다보니 어두워져 식당으로 들어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히말라야와 별을 보고 있자니 흥이 돋는다. 사람들과 술 한잔하고 싶어져 아래쪽 롯지와 당구장을 돌며 아는 사람들을 찾았지만 모두 자는지 볼 수가 없어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잠깐 언덕을 오르는데 숨이 차서 몇 번을 쉬며 올라왔다.
느낌이 이상하다.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박동이 심한 운동하는 것처럼 쿵쾅거린다.
핸드폰을 꺼내 심장박동과 산소포화를 측정해 보니 심상치 않다.
심박 수는 높고 산소포화도는 낮다. 하지만 이보다 불안감이 더 크다. 이게 고산증의 초기증상인가?
고산증은 원인은 해발 고도가 2400m 이상으로 높아질 때 평지보다 산소량이 줄어드는데 우리 몸이 저산소에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생기거나 적응하지 못해 심해지는 여러 증상이 있다.
첫 번째로 두통으로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지며, 식욕이 없어지고 걷기 어려워지는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숨이 가빠짐, 기침, 어지럼증, 환시, 환청 등의 중증 그리고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 뇌가 붇는 뇌부종 등이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초기에는 이뇨제 등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지만, 중증부터는 신속히 고도 500m 이상 낮은 곳 이동하여 우리 몸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여 치료를 받는 게 급선무이다.
특히 이런 증상이 밤에 나타나면 대처가 힘들기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히말라야 여행객들이 가장 염려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이 고산병이다.
예방하는 방법은 고도를 올릴 때 천천히 걸어 몸이 고소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과 3000m가 가까워지면 적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옷을 껴입어 체온을 지키고 체력을 안배하여 몸이 저산소 상황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누구도 장담 할 수 없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밤이 늦어 상의할 곳이 없어 급히 다이아목스 한 알을 먹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똑같다. 이를 어쩐다. 걱정하며 내일 아침까지만 살아 있자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고산 증상이 나타나면 ABC나 EBC에서는 헬기를 이용하여 하산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1500불 이상이어서 부담이 크단다.
물론 보험에 가입하면 헬기 비용도 처리가 되지만 한국 내 보험회사에서는 보장하지 않아 외국의 보험회사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날이 밝아야 헬기라도 부르지 하는 번민 속에 저 높은 히말라야만큼 큰 걱정을 머리맡에 두고 어렵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