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여고 교사이던 아내의 근무처를 서울로 바꿔주겠다고…
유신정권 말기인 1977년 발족한 국군보안사령부의 법적인 설립 목적은 ‘군사에 관한 정보 수집 및 수사’로 요약된다. 이 수사 기능을 바탕으로 1979년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이던 정승화 대장을 체포하는 등의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 정식 계통을 무시하고 개인 전두환의 사적 명령을 추종한, ‘하나회’라는 육사 출신 군내 사조직의 물리력 동원 덕에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면에 내세운 대의명분은 어디까지나 ‘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된 군 고위 관계자 수사’였다.
보스가 쿠데타에 성공해 중앙정보부까지 무력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통째로 장악했으니 보안사의 서슬은 어떻겠는가. 편제상 국방부의 직할부대면서도 사실상 정권 유지의 기반 역할을 하는 특수기관으로 군림했다. 전국 주요 거점별로 ‘00기업사’ 등의 위장 명패를 건 보안사 분실이 군사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제반 분야 사찰까지 도맡았다. 그러니 당시 보안사 직원의 입김에도 성사 불가능한 일이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의 한 사립고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아내의 근무처를 서울로 옮겨줄 수 있다는 보안사 직원의 제안을 받았다.
1981년 11월 결혼과 거의 동시에 공군 중위의 국방부 정훈국 문화홍보과 ‘현 위치 전속’이 확정돼 계속 근무하게 됐지만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해 12월 말 방학이 되기 전까지는 대전의 여고에서 담임을 맡고 있던 아내가 주말마다 서울 전셋집으로 올라오곤 했다. 나의 이런 처지를 보안사의 정훈국 담당자가 관내 인물 동향파악 차원에서 챙긴 듯했다. 하루는 과장이 날 부르더니 ‘내 경례를 받았던 그 상사’의 소개라면서 국방부 본관 뒤편 부속건물의 보안대 사무실로 가보라고 귀띔했다. 그곳의 000 직원을 만나보면 아내가 서울로 전근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4)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