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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주 May 05. 2021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던 건 아닐까

다른 스포츠 분야처럼 당구 역시 인생사의 축소판

명지대 미래교육원 스포츠당구 지도자 과정 8주 차인 지난 5월 4일 인천 구월동 7당구클럽. 폰캠을 동원한 밀어치기와 끌어치기 중간고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사를 논할 때 자주 소환되는 단어 중 하나가 길(way/road)이다. 한평생 살면서 수시로 마주치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형성되는 삶의 모양과 색깔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길’을 키워드로 삼은 문학 작품이나 철학적 격언은 무수히 많다. 그중 얄팍한 내 지식 보따리 속에서 제일 먼저 고개를 내미는 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미국의 서정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숲속의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는 인생의 고뇌를 읊었다. 중고생쯤이면 잘 아는 서양 속담도 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삶 속에서 난관에 부닥쳤을 때 누구나 한 번쯤 곱씹어봄 직한 일종의 진리다.

스포츠당구 지도자 실기시험 대비 멘트를 붙인 폰캠을 중간고사 촬영 최적화 상태로 조절하고 있는 스포츠 만능 수강생.

다른 스포츠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당구 역시 이러한 격언 등을 상기시키는, 인생사의 축소판이다. 서두를 거창하게 장식해놓고 뜬금없이 당구 얘기로 돌면 혹자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구를 아예 모르는 ‘무지의 소치’거나 건달들 잡기쯤으로 폄훼하는 ‘편견의 극치’일 수도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당구가 수학이고 물리학임은 진지하게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한 평 안팎의 테이블 위에 그릴 수 있는 무한대의 길 중에서 득점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한눈에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높은 성공 확률이 있는 길을 택해 최적의 물리력으로 공을 보내야 한다.

대한당구연맹 공인심판 시험에 대비해 포켓볼 부문 룰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명지대 미래교육원 스포츠당구 지도자 과정 선후배들.

득점에 실패했을 때는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던 건 아닌지 후회가 남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일 것만 같은 격언도 당구 테이블에서만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불가능한 길에 아무리 뜻을 둔다고 한 들, 요행수(fluke·플루크)가 아니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난구(어려운 공) 배치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본인의 창의적인 ‘뜻’을 발휘하기보다 선지자들이 개척해놓은 ‘길’을 찾는 게 현명하다. 이런 종류의 깨달음을 얻은 대한민국의 뭇 고수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축약한 극히 평범한 한마디는 이렇다. ‘당구는 길이 있는 곳으로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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